적용
① 다시 인정하기 / Owning What I’ve Ignored
나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다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어느 영역에서는 내가 주인 노릇을 하며 그분의 요구를 흘려듣고 있지 않습니까?
농부들은 상속자를 알아보고도 거부했습니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주인의 자리를 지키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기도 중에, 혹은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여러 번 분명하게 깨닫게 하신 것이 있는데도, “아직은 아니야”, “이건 내가 알아서 할게”라며 계속 미뤄온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이번 주, 그 메시지 하나를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인정해 보십시오. 흘려듣던 그 한 가지를 이번 주 안에 실제로 마주하십시오.
“저는 알면서도 미뤄왔습니다. 오늘 그것을 인정하고, 다시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② 주인께 맡기기 / Returning What Was Never Mine
시간이든, 재정이든, 자녀든, 은사든 — 지금까지 “내 것”이라 여기고 움켜쥐고 있던 것이 있습니까?
포도원의 열매는 원래 주인의 것이었습니다. 농부들이 그것을 돌려드리지 않은 것부터 반역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맡기신 시간, 재정, 자녀, 은사를 “내 것”으로 여기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이건 헌금을 더 하라거나 예배에 더 참석하라는 정해진 답이 아닙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마음에 깨닫게 하시는 것, 바로 그것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재정과 시간뿐 아니라, 오랫동안 미뤄온 화해나 용서도 포함됩니다.
이번 주, 움켜쥐고 있던 것 중 구체적인 한 가지를 실제로 하나님께 다시 내어드려 보십시오.
“이것은 제 것이 아니라 주님 것이었습니다. 오늘 다시 주님께 돌려드립니다.”
③ 열매로 살아보기 / Letting the Fruit Show
내가 누구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지, 삶으로 드러나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열매는 거창한 종교적 실적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용서로, 정직으로, 섬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말씀을 알아들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무서운 신앙은 모르는 신앙이 아니라 알면서도 돌이키지 않는 신앙입니다.
이번 주, 용서해야 할 한 사람을 용서하거나, 정직하지 못했던 한 가지를 바로잡거나, 작은 섬김 하나를 구체적으로 실천해 보십시오.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 가지면 충분합니다.
“제 삶에 열매로 드러나게 하소서. 오늘 그 한 걸음을 걷겠습니다.”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민낯을 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시간을, 재정을, 자녀와 은사와 관계를 맡기셨는데, 우리는 어느새 그것을 “내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위탁받은 자리에서 슬그머니 주인 행세를 해온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는 오랫동안 참으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사람을 통해, 성령의 깨우침으로 계속해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면서도 외면하고, 알면서도 미뤄왔습니다. 우리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주님의 음성을 흘려들었던 순간들을 오늘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런데 감사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반역했음에도,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죽이려 했던 그 아들을, 주님은 다시 살리셔서 머릿돌로 세우셨습니다. 사람이 버린 것을 하나님이 가장 귀한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은혜 앞에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의 반역이 하나님의 구원을 막을 수 없었고, 오히려 그 십자가가 우리를 살리는 길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힘을 주옵소서. 우리 힘으로는 안 되는 줄 압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셔서, 이번 주 우리가 흘려듣던 것을 다시 붙들게 하시고, 움켜쥐고 있던 것 하나를 실제로 내어드리게 하시고, 삶에서 사랑과 용서와 정직과 섬김의 열매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순종이 주님께 인정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다시 맡아주신 그 은혜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감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세입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참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