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대신 얼굴을] / Seeking His Face, Not a Seat
나는 지금 자리를 구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구하고 있습니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주십시오”라고 구했습니다. 왕관 곁의 자리를 원한 겁니다. 반면 두 맹인은 그저 “눈뜨기를” 구했습니다. 정작 자리를 구했던 제자들은 아직 제대로 보지 못했고, 눈뜨기를 구했던 맹인들은 이미 예수님을 정확히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속에서 은근히 자리를 구할 때가 있습니다. 인정받는 자리, 알아주는 자리, 앞에 서는 자리. 예배도, 봉사도, 기도도 — 어느새 그 자리를 향한 마음으로 채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 자리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얼굴보다 앞서 있다면 문제가 됩니다.
이번 한 주, 내가 은근히 원하고 있는 “자리”가 무엇인지 솔직하게 떠올려보십시오. 그리고 그 자리를 구하는 마음 뒤에, 예수님의 얼굴을 구하는 마음이 있는지 조용히 점검해보십시오.
“주님, 저도 자리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외치기] / Crying Out
세상이 조용히 하라고 할 때, 나는 입을 닫습니까, 더 크게 부릅니까?
두 맹인은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무리가 꾸짖었습니다. 조용히 하라고, 시끄럽다고. 그런데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크게 외쳤습니다.
우리에게도 조용히 해야 할 것 같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모임에서,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 신앙을 드러내는 게 눈치 보이는 순간, 기도를 부탁하는 게 부담스러운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춥니다.
이번 한 주, 조용히 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다면 — 딱 한 번, 그 마음을 거슬러 목소리를 내보십시오. 기도를 부탁하고, 감사를 표현하고, 필요를 나눠보십시오.
“주님, 세상이 조용히 하라 해도, 저는 더 크게 주님을 부르겠습니다.”
[멈추지 않고 따르기] / Not Stopping, Following
응답받은 그 자리에서, 나는 멈춰 있습니까, 계속 걷고 있습니까?
두 맹인은 눈을 뜨자마자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마태는 그냥 “고침을 받았다”로 끝낼 수도 있었는데, 굳이 “따르니라”까지 기록했습니다. 눈을 뜬 것은 기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그들이 구한 것은 시력이었지만, 받은 것은 제자의 눈이었습니다.
우리도 응답받은 기도가 있습니다. 취업이, 건강이,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진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우리의 걸음은 어땠습니까. “이제 됐다”며 신앙의 열심이 조용히 식어버린 적은 없었습니까.
이번 한 주, 지난 응답받았던 기도 제목 하나를 떠올려보십시오. 그리고 그 응답 이후 내 신앙의 걸음이 어떻게 변했는지 조용히 돌아보십시오. 필요하다면, 다시 새벽 제단이든 말씀 앞이든 — 걸음을 다시 떼어보십시오.
“주님, 응답받은 그 자리가 끝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 다시 일어나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저희도 자리를 구하며 살아왔습니다. 왕관 곁에 있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무언가를 손에 쥐고 싶어서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앞에 이 눈을 엽니다.
세상이 조용히 하라 해도, 더 크게 주님을 부르게 하소서. 저희를 향해 창자가 뒤틀리도록 불쌍히 여기시는 그 긍휼의 손이, 오늘 저희의 눈도 만져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눈을 뜨는 순간, 거기서 멈추지 않게 하소서. 응답받은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무리가 아니라 주님을 따라 걷게 하소서. 주님이 가시는 곳이 예루살렘이면 예루살렘으로, 십자가면 십자가로, 저희도 함께 걷게 하소서.
한 주간, 저희의 걸음이 주님을 향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