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설교
다 이겼지만
다 잃은 것 같은 날
사무엘하 18:19–19:8
오늘 설교의 말씀을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함께 나눕니다.
부부 사이에서
“우리 사이에 나쁜 소식을 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부 사이에도 꺼내기 어려운 말이 있습니다. 상처가 될 것 같아서, 싸움이 될 것 같아서 — 계속 미루는 대화가 있습니다. 아히마아스가 다윗 앞에서 차마 말을 못 꺼냈던 것처럼. 그런데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쁜 소식은 결국 옵니다. 오히려 늦을수록 더 무거워집니다.
이번 한 주, 배우자와 피해왔던 그 대화를 꺼내보십시오. 통과해야 진짜 좋은 소식이 옵니다. 그리고 응답이 없는 것 같은 시간에도 — 하나님은 침묵하신 게 아닙니다. 판결하고 계십니다. 함께 기다리십시오. 성문 위의 다윗처럼.
기도 제목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사이에 피해온 말들이 있습니다. 두렵고 불편하지만 — 통과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함께 기다리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판결하고 계심을 믿게 하옵소서. 슬픔 안에서도 함께 일어나는 부부가 되게 하옵소서.”
믿는 배우자 →
믿지 않는 배우자에게
“나는 배우자를 위해 나쁜 소식을 통과하고 있습니까?”
믿지 않는 배우자 곁에 있다는 것은 — 아히마아스처럼 나쁜 소식을 안고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빨리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소식만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식은 다릅니다. 나쁜 소식을 통과해서 진짜 좋은 소식이 옵니다.
지금 이 기다림의 시간이 —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시간이 아닙니다. 판결하고 계시는 시간입니다. 배우자를 바꾸려는 손을 내려놓고 — 기도하는 손을 드십시오. 다윗이 성문 위에서 기다렸던 것처럼. 그 기다림이 헛되지 않습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 아버지, 배우자를 위해 오래 기다리고 있습니다. 응답이 없는 것 같아 지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침묵하신 게 아니라 판결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게 하옵소서. 제가 먼저 부활의 힘으로 일어나 — 배우자 곁에 서 있게 하옵소서.”
부모 →
초등 이하 자녀에게
“아이에게 나쁜 소식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있습니까?”
아이들은 부모의 얼굴을 읽습니다. 부모가 힘들다는 것을, 집안이 어렵다는 것을 — 말하지 않아도 느낍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종종 아이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현실을 숨깁니다. 아히마아스처럼 좋은 소식만 전하려 합니다.
아이의 나이에 맞게,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주십시오. “우리 가족이 지금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어.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계셔.” 슬픔 안에서도 일어나는 부모의 모습이 — 아이에게 가장 큰 설교입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 아버지, 아이 앞에서 괜찮은 척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슬픔 안에서도 일어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게 하옵소서. 아이가 하나님의 침묵 안에서도 판결하시는 하나님을 — 부모를 통해 배우게 하옵소서.”
부모 →
중등 이상 자녀에게
“자녀의 ‘다 이겼지만 다 잃은 것 같은 날’을
함께 앉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중고등학생 이상의 자녀들도 그런 날이 있습니다. 시험에 붙었는데 기쁘지 않은 날. 원하던 것을 얻었는데 공허한 날. 그런데 부모는 종종 “잘 됐네”라고 끝냅니다. 아이의 속에 있는 나쁜 소식을 듣지 않습니다.
다윗이 성문 위에서 기다렸던 것처럼 — 자녀 곁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요즘 어때?” 한 마디가 시작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다고 말할 때 — “하나님은 침묵하신 게 아니야. 판결하고 계셔”라고 말해주십시오. 그 말이 자녀의 슬픔 안에서 일어서는 힘이 됩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 아버지, 자녀의 나쁜 소식을 듣는 부모가 되게 하옵소서. 아이가 ‘다 이겼지만 다 잃은 것 같다’고 할 때 — 함께 앉아 있는 부모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부활의 힘으로 일어나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