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자리에 므비보셋 같은 분이 계십니까?
분명히 내가 옳은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억울한 마음이 드는 분이 계십니까? 내가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한 것 같은 분이 계십니까?
오늘 설교를 들으셨다면 — 그런 분들이 꼭 기억하셔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왕을 보고 있는가, 내 몫을 보고 있는가?”
므비보셋과 이스라엘/유다는 같은 시간, 같은 왕의 귀환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베샬롬을 봤고, 이스라엘과 유다는 야드(지분)를 봤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1. 억울한 자리에서 — 그래도 충분합니다
지금 내가 분명히 옳은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자리에 있습니까? 불공정한 판결을 받은 자리에 있습니까? 물론 정당한 방법으로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므비보셋도 자신의 억울함을 왕 앞에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이 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 판결을 자기 손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끝까지 증명하려는 손을 내려놓고 — 더 큰 재판장이신 왕 앞에 맡기는 것. 이번 한 주, 억울한 그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억울합니다. 그런데 충분합니다. 왕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2. 내 몫을 따지는 자리에서 — 야드에서 베샬롬으로
지금 관계에서 내 몫, 내 지분을 따지고 있습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 ‘내가 이만큼 했는데, 내가 이만큼 받아야 하는데’라고 계산하고 있습니까? 그 계산의 자리에서 잠깐 멈추십시오. 이스라엘과 유다는 왕이 돌아왔는데도 야드를 따졌습니다. 왕을 봤더라면 — 몫을 따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왕이 이미 와 계십니다. 이번 한 주, 계산이 시작되는 그 순간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계산을 멈춥니다. 왕이 오셨으니 충분합니다.”
3.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 더 큰 왕을 바라보는 것
몇 주 동안 사무엘하를 함께 걸어왔습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이 있습니다. 완전한 왕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조차도 서지 못한 자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들이 우리로 하여금 더 큰 왕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7월부터 신약으로 넘어가는 이 자리에서 — 우리가 만날 그 왕을 기대하십시오. 그분이 베샬롬이십니다. 이번 한 주, 아침마다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다윗이 서지 못한 그 자리에 예수님이 서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충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억울한 자리에 서있는 분이 있습니다. 분명히 옳은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자리, 불공정한 판결을 받은 자리. 그런데 왕이 베샬롬으로 돌아오셨다는 사실이 그 모든 것보다 크다는 것을 믿게 하옵소서. 또한 이스라엘과 유다처럼 야드를 따지고 있는 자리에서 — 왕을 다시 보게 하옵소서. 다윗이 서지 못한 그 자리에 예수님이 서셨다는 것을 —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알게 하옵소서. 억울해도 충분합니다. 왕이 오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