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적용 카드
왕은 이겼지만
아버지는 졌습니다
사무엘하 17:24–18:18
오늘 설교의 말씀을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함께 나눕니다.
교회 다니는 아내 →
교회 안 다니는 남편에게
오늘 설교에서 다윗은 압살롬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명령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무력했습니다. 혹시 지금 남편이 교회에 오지 않는 것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까? 설득도 해보고, 부탁도 해보고, 기도도 해봤는데 — 여전히 그 자리입니까?
다윗이 하지 못한 것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은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않으셨습니다. 더 큰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향한 하나님의 뜻도 — 내가 막을 수 없고, 내가 만들 수도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윗처럼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 남편을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를 사십시오.
기도 제목
"하나님 아버지, 남편을 향한 제 마음이 너무 무겁습니다. 제 힘으로는 그의 마음을 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다윗이 하지 못한 것을 하나님이 하셨던 것처럼 — 제가 막지 못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먼저 가주십시오. 제가 바꾸려는 손을 내려놓고, 기도하는 손을 들게 하옵소서."
아내 → 남편에게
남편 → 아내에게
압살롬은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자기 손으로. 그런데 결국 이름 없는 구덩이에 묻혔습니다. 결혼 생활에서도 우리는 종종 기념비를 세웁니다. "내가 이만큼 했다", "내가 더 참았다", "내가 더 희생했다" — 자기 손으로 세우는 기념비입니다. 그 기념비가 쌓일수록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집니다.
하나님은 죄 없는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자기 이름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 우리를 얻기 위해서. 그것이 사랑입니다. 이번 한 주, 배우자 앞에서 내가 세우고 있는 기념비가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먼저 말을 건네십시오. 기념비 없이.
기도 제목
"하나님 아버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배우자 앞에서 기념비를 세워왔습니다. '내가 이만큼 했다'는 마음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있었습니다. 그 손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얻기 위해 아들을 보내신 것처럼 — 저도 배우자를 얻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게 하옵소서."
부모 →
초등~중등 자녀에게
다윗은 압살롬을 끝까지 "소년"이라고 불렀습니다. 반역자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눈에 그는 끝까지 —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혹시 요즘 자녀가 말을 듣지 않습니까? 아무리 얘기해도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래도 — 그 아이는 여전히 내 소년입니다. 내 딸입니다.
이번 한 주, 자녀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먼저 보기 전에 —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다윗이 "소년 압살롬"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나는 네 편이야." 그 한 마디가 아이의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 아버지, 요즘 아이를 볼 때 잘못과 부족함이 먼저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반역한 우리를 여전히 '소년'이라 부르십니다. 저도 그 눈으로 내 아이를 보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아이의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줄 수 있게 하옵소서. '나는 네 편이야'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하옵소서."
부모 →
고등 이상 자녀에게
압살롬은 스스로 왕이 되려 했습니다. 자기 이름을 세우려 했습니다. 그리고 저주의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고등학생 이상의 자녀들은 지금 자기 이름을 세우기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 입시, 취업, 관계, 미래 — 모든 것이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향해 있습니다. 그 질주가 때로는 하나님을 밀어내고, 부모를 밀어내고, 자기 자신마저 밀어냅니다.
부모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윗의 간청입니다. 자녀의 질주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 자녀에게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네가 어떤 사람이 되든 — 하나님은 이미 너를 알고 계신다. 네가 손으로 세우지 않아도." 그 말이 자녀의 질주를 멈추게 하는 씨앗이 됩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 아버지, 지금 제 아이가 자기 이름을 세우기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 그 질주가 때로 무섭고, 때로 안타깝습니다. 제 힘으로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다윗처럼 간청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 복음을 — 아이가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전할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이미 그 아이의 이름을 아신다는 것을, 제 입술로 전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