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1-상세적용(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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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앞에서 고백하다 / Confessing at the Tomb

나는 어떤 무덤을 꾸미며 “나는 그들과 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하얗게 꾸미고, “우리가 그때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상의 죄는 인정했지만, 자신은 그 죄에서 쏙 빼 버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눈앞에 계신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와 달라.” “나는 저런 사람들과는 달라.” 다른 사람의 실패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 순간, 우리는 또 하나의 무덤을 꾸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주 실천: 뉴스나 주변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의 실패를 들을 때, 판단하는 말 대신 마음속으로 이렇게 한 번 기도해 봅시다. “주님, 저도 그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 우리도 그들처럼 죄를 지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꾸민 무덤 뒤에 숨지 않고, 은혜 앞에 정직하게 서겠습니다.

걸려 온 전화를 받다 / Answering the Call

몇 번이나 걸려 왔는데, 무음으로 돌려놓은 주님의 전화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세례 요한을 보내시고, 마침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그 전화를 받지 않았고, 결국 전화를 건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몇 번이더냐” 하시며 그 부르심을 한 통 한 통 기억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받지 않은 전화가 있습니다. 말씀을 읽다가 마음이 찔렸던 그 한 구절, 예배 중에 떠오른 그 사람의 얼굴, 지체가 조심스럽게 건넨 한마디. 바빠서, 불편해서 넘겨 버린 부르심입니다.

이번 주 실천: 최근 마음에 걸렸지만 미뤄 둔 말씀이나 마음 하나를 적어 보고, 하루를 정해 그 부르심 앞에서 5분 동안 조용히 기도해 봅시다.

주님, 그 전화는 저를 정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부르시는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그 전화를 받겠습니다.

옆자리를 내어 주다 / Making Room Under the Wings

우리는 같은 날개 아래 모인 사람으로 서로의 자리를 내어 주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암탉이 새끼들을 날개 아래 모으듯 예루살렘을 모으려 하셨습니다. 보아스는 다른 나라에서 홀로 온 룻에게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날개 아래 병아리가 아니라 날개를 펴는 암탉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교회는 누군가를 품는 암탉이 아니라, 같은 날개 아래 함께 모인 병아리들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신앙이 아직 어색한 사람, 오랫동안 교회를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 우리는 그들보다 먼저 와 있었을 뿐, 같은 날개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이번 주 실천: 주일 예배에서 아직 잘 모르는 성도 한 분 곁에 앉아, 예배 후 이름을 묻고 함께 차 한 잔을 나눠 봅시다.

주님, 저는 품는 자리가 아니라 품긴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옆자리를 조금 내어 드리겠습니다.

기도문

숨은 아담을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찾아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 물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가 꾸민 무덤 뒤에 숨어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말했던 날들을 고백합니다. 몇 번이나 걸려 온 주님의 전화를 무음으로 돌려놓고, 날개 아래 병아리가 아니라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했던 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 끝까지 저희를 원하셨던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저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십자가에서 대신 지시고, 무덤을 비우고 다시 살아나셔서, 오늘도 저희를 날개 아래 모으시니 감사합니다. 회개조차 저희 힘이 아니라 성령께서 맺게 하시는 열매임을 믿습니다.

이번 한 주, 꾸민 무덤 앞에서 정직하게 고백하게 하시고, 걸려 오는 주님의 전화를 받게 하시고, 같은 날개 아래 있는 이웃에게 옆자리를 내어 주게 하소서.

저희를 먼저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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