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8.30 칼럼 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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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순종은 아직 배송 중입니까?

부제 :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이 먼저 순종했다 | 마태복음 21:23-32

요즘 우리는 로켓배송, 새벽배송에 익숙합니다. 급하게 주문하면 몇 시간 안에 물건이 도착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배송 중”이라는 화면에서 멈춰 있는 물건도 있습니다. 결제는 끝났는데 물건은 아직 손에 없는 그 답답함, 다들 한 번쯤 겪어보셨을 겁니다.

우리 신앙에도 이런 것이 있습니다. 바로 순종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 그렇게 살겠습니다” 하고 결제를 마쳤습니다. 기도할 때, 결단할 때 우리는 참 유창하게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고백이 정말 우리 삶의 구체적인 자리까지 걸어갔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배송 중”입니까?

지난주 우리는 성전 정화 사건과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을 보았습니다. 둘 다 같은 진단이었습니다. 겉모습은 화려한데 실제는 비어 있었다는 것. 예배는 돌아가고 있었지만 진짜 예배는 없었고, 잎은 무성했지만 열매는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진단이 세 번째로, 이번엔 이야기의 형태로 되풀이되는 자리입니다.

성전에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권위를 따집니다. 이는 진짜 궁금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면 순종해야 한다는 책임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답하지 않으시고 요한의 세례를 물으십니다. 요한과 예수님은 하나의 흐름 안에 있는 분들입니다. 요한을 인정하면 그가 증언한 예수님도 인정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우리는 알지 못하노라” 답하며, 진실보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쪽을 택합니다.

이어 예수님은 두 아들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예, 아버지, 가겠습니다” 대답했지만 실제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둘째에게도 같은 부탁을 하니 처음엔 “싫습니다” 했지만, 그 후 뉘우치고 실제로 걸어가 일했습니다.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지도자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째 아들이니이다.” 지도자들은 누구보다 먼저 “예”라고 말한 사람들이었지만, 그 “예”는 결제 확인 문자였을 뿐 한 번도 발송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가 그들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선언하십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진짜 돌이킨 이들이 먼저 도착한 것입니다. 이 반전의 밑바닥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요한을 믿었느냐, 그 믿음이 실제 발걸음으로 드러났느냐가 오늘 본문의 진짜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엔 완전히 순종한 아들이 없습니다. 완전한 순종은 오직 한 분, 예수님에게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은 겟세마네에서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옵나이다” 기도하시고, 그 발걸음 그대로 십자가까지 걸어가셨습니다. 우리가 이루지 못한 순종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이루셨고, 우리의 “아니오”까지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이 은혜는 값없이 주어졌지만 결코 값싸지 않습니다. 그 값을 예수님이 몸으로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값은 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순종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진 자에게서 맺히는 은혜의 열매입니다. 이번 한 주, 세 가지만 기억합시다. 마음으로는 “예” 했지만 미뤄둔 것을 실제로 걸어가는 것, 신앙생활 오래 했다는 안일함에서 벗어나 처음 믿던 마음으로 다시 서는 것, “저 사람은 안 될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배송 중이지만, 예수님은 이미 완전히 도착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문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이미 열어놓으신 그 문으로 오늘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 순종은, 지금 어디쯤 와 있습니까?” 이 질문을 이번 한 주 마음에 품고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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