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설교 적용 나눔
“무엇을 구하는지 몰랐습니다” (마 20:17~28)
이번 한 주, 이 질문 하나를 붙잡으십시오.
“나는 지금 내 욕망에 머물러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가?”
세 자리에서 이 질문을 붙잡아 봅니다.
① 알아차리기 / Naming the Two Hearts
“나는 지금 두 마음 중 어느 쪽에 서 있는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주의 나라에서”라고 구했습니다. 그 말 자체는 신앙의 언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내 아들을 우편에”라는 마음이 함께 있었습니다. 두 마음이 한데 뒤섞여서, 그들 자신도 어느 게 어느 건지 몰랐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잘되셨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믿음으로 자녀를 키우고 싶으면서, 동시에 “어떻게 그렇게 잘 키우셨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둘 다 진짜라서, 구분이 더 어렵습니다.
이번 한 주, 무언가를 구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 한 번 멈춰서 물어보십시오. “지금 나는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정직하게 대답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숨기지 않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제가 원하는 것을 저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주님을 따라갑니다.”
② 낮아지기 / From Serving to Being Served
“나는 섬기는 자리와 섬김받는 자리 중 어디에 서고 싶은가?”
예수님은 크고자 하는 자에게 “섬기는 자가 되라” 하셨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 “종이 되라” 하셨습니다. 욕망이 클수록, 낮아짐도 더 깊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건 “욕심 좀 있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분명한 명령이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부름받았다고 해서 욕망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압니다. 여전히 인정받고 싶고, 여전히 앞서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명령입니다.
이번 한 주, 누군가를 섬길 기회가 왔을 때 — 특히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자리일 때 — 그 자리를 피하지 말고 서 보십시오. 자녀의 뒤치다꺼리, 이름 없는 봉사, 티 안 나는 배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저는 아직 섬기는 자보다 섬김받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런데도 낮아지는 길을 걷겠습니다.”
③ 신뢰하기 / The Cup, Not the Crown
“나는 지금 왕관을 보고 있는가, 잔을 보고 있는가?”
제자들이 우편과 좌편의 자리를 구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 자리를 향해 가고 계셨습니다 — 다만 보좌가 아니라 십자가였습니다. 훗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우편과 좌편에 있던 자들은 강도 둘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그토록 원하던 자리에, 결국 예수님만 홀로 서 계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우리도 살면서 자꾸 왕관을 봅니다. 더 나은 자리, 더 많은 인정, 더 높은 곳. 그런데 그 자리를 얻지 못해 조급하고 억울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값을 다 치르셨다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 자리를 얻지 못해 조급해지는 순간마다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제가 구하던 자리에 강도가 있었고, 그 사이에 주님이 계셨습니다. 그 은혜로 오늘도 걷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오늘도 자리를 구합니다. 인정받고 싶고, 앞서고 싶고, 크고 싶습니다. 무엇을 구하는지도 모른 채, 주님 앞에 손을 내밀 때가 많습니다.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은혜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구하던 그 자리에, 주님이 대신 서셨다는 것을. 강도들 사이에서, 우리를 위해 홀로 그 값을 치르셨다는 것을.
여전히 크고 싶은 마음, 앞서고 싶은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섬기는 자로, 낮아지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가 다 알지 못해도, 오늘도 주님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