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집니다
그래서 받지 못했습니다."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상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순간이 많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돌보고, 참아주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이만큼 했으니 알아주겠지"라는 계산이 있습니다. 그 계산이 채워지지 않으면 서운함이 쌓입니다.
청년은 계명을 다 지키고도 받지 못했습니다. 받기 위해 했기 때문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같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배우자의 인정이 아니라, 이미 받은 사랑이 내가 오늘 무언가를 하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까?
믿지 않는 배우자 곁에서 혼자 신앙을 지키는 일은 지칩니다. 혼자 예배드리고, 혼자 기도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시간이 쌓이면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배우자는 왜 변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듭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손을 얹으심을 받았습니다. 배우자의 변화가 내 사랑의 조건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이미 받은 자입니다. 그 받음이 오늘 사랑할 힘의 근거입니다.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부모에게 "제가 몇 걸음을 걸어야 아들이 됩니까" 묻지 않습니다. 이미 아들이고 딸이기 때문에 그냥 손을 잡고 걷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는 어느새 칭찬과 보상으로 아이의 행동을 조건화하기 시작합니다.
청년처럼 "잘해야 사랑받는다"는 문법을 아이에게 심으면, 아이는 평생 점수를 계산하며 살게 됩니다. 아이에게 먼저 알려주십시오.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이라고.
청소년기 자녀는 성적, 등수, 결과로 자신을 증명하라는 압박 속에 삽니다. 청년이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라고 물었던 것처럼, 자녀도 "내가 무엇을 이루어야 인정받습니까"라는 질문을 속에 안고 삽니다.
예수님은 청년에게 행위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내미셨습니다. 자녀에게도 결과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받아주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성적이 오르기 전에도, 시험에 떨어진 날에도 — 여전히 사랑받는 자녀라는 것을 말해 주십시오.
결혼, 커리어, 성취 — 채워야 할 것 같은 조건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조차 "이 정도는 이뤄야 하나님 앞에 떳떳하다"는 자격 증명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청년이 계명을 다 지키고도 여전히 불안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채로 손을 얹으심을 받았습니다. 지금 당신의 조건이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서는 근거는 그것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자로 오늘을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