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5 칼럼
2025.10.5 칼럼

제목 : 지나가시는 예수님, 찾아오시는 예수님

1.  기적 이후의 혼란

오병이어의 기적은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15,000명 이상을 먹이신 예수님. 그 자리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은 제자들을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했습니다. ‘이분과 함께 있으면 절대 굶지 않겠구나’라는 계산이 섰던 것입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그런 생각에 동조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권력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해하는 군중들과 정신을 못 차린 제자들을 분리시키기 위해 제자들을 배에 태워 보내셨습니다.

2. 순종했는데 왜 고난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타고 타브가에서 벳새다로 향했습니다. 이 거리는 배로 8km 정도, 걸어서 2km 정도로 천천히 가도 2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반대 바람이 심하게 불었습니다. 갈릴리 호수의 베테랑 어부들인 제자들이었지만, 밤 사경(새벽 3-6시)까지 8시간 넘게 노를 저어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 신앙생활 제대로 해야지’ 결심했는데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열심히 순종하며 살았는데 직장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관계가 깨어지는 일들.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는데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밤새 노를 젓는 제자들의 마음이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3. 지나가시려는 예수님?

마가복음 6장 48절은 충격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노 저으면서 고통받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가가셨는데, 그들을 지나쳐 가기 위해서다.” 제자들이 고생하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냥 지나가시려 하셨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우리 인생에도 이런 순간들이 있다. 마음이 무너지는데 예수님이 그냥 지나가시는 것 같고, 재정적으로 힘든데 모른 척하시는 것 같고, 관계가 깨어져 아픈데 외면하시는 것 같은 순간들. 바로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주여”라고 부르짖기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고 “주여”라고 외쳤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반응입니다.

“주님, 주님이 저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이렇게 저의 삶은 힘듭니까?”

“주님, 저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왜 이렇게 아픔이 남아 있습니까?”

“주님이 저를 사랑하신다고 하셨는데 왜 이렇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습니까?”

이해되지 않고 답답하고 캄캄한 문제가 괴롭힌다면 베드로처럼 “주여”라고 부르십시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마음에 절망이 가득 차고 우울함이 있을 때 포기하지 말고 “주여”라고 외치십시오. 관계가 회복되지 않고 재정이 부족하고 미래가 답답할 때 회피하지 말고 “주여”라고 부르십시오. 일상에서 도망가지 말고, 예배의 자리에서 도망가지 말고 “주여”를 부르십시오.

베드로는 “주여”라고 부르며 물 위를 걷기 원했고, 예수님은 “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실제로 물 위를 걸었습다. 그러다 바람과 파도를 보는 순간 두려움이 들어왔고 물속으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시 “주여”라고 불렀고, 예수님은 그의 손을 잡아 살려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작습니다. 때로 볼품없습니다. 다섯 걸음 걷다가 빠지기도 하고, 두 걸음 만에 잠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아무리 작아도 “주여”라고 외칠 수는 있습니다.

4. 두 가지 시각: 마가복음과 마태복음

흥미롭게도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지나가려고 하셨다”고 기록했고,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모순이 아닙니다. 마가복음은 제자들의 시점으로 본 것이고,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시점으로 본 것입니다.

우리는 힘들 때 지금 당장 일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은 항상 지금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과 다르고, 하나님의 때는 우리의 때와 다릅니다. 그때 우리 눈에는 예수님이 관심 없이 지나가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꼭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언제나,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시고, 항상 우리를 향해 오고 계십니다. 우리의 시각에서는 지나가시는 것 같지만, 예수님의 시각에서는 우리를 향해 오고 계십니다.

5.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 폭풍 치는 갈릴리 호수 위를 걸으신 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파도가 높이 올라갈 때 예수님도 올라가고 내려갈 때 내려가신 것이 아닙니다. 시편과 욥기는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고, 파도가 일어날 때 잔잔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밟으실 때 그곳은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잔잔한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100미터 육상 선수를 생각해보십시오. 시 대회 우승이 최고 성적인 코치에게 배우면 전국 대회 우승은 어렵습니다. 전국 대회 우승 경험이 있는 코치에게 배워도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은 쉽지 않습니다. 세계 기록을 세우려면 그런 경험이 있는 코치가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문제는 때로 지역 대회 같은 작은 문제가 아니라 세계 대회 같은 거대한 파도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단순히 좋은 스승, 위대한 선지자, 능력 있는 기적 행위자라면 우리의 한계는 금세 드러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파도를 다스리시고 바람을 멈추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6. 전능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기

제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 삶에는 고난이 따랐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죽음의 위협을 당하고, 모욕과 경제적 손해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믿는 예수님이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성도이고 제자입니다. 몸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전능하시기에 우리는 치료의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하고 심장이 두근거릴 때도 전능하신 예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어떤 고난과 아픔과 절망이 있어도 예수님은 우리를 충분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비전을 주실 때 우리는 전능하신 예수님을 믿고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가족의 구원, 믿음의 성장, 미래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믿고 맡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땅을 떠나면 영원한 천국이 있기에 더욱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7. 결론

우리 눈에는 예수님이 우리 상황을 모르고 그냥 지나가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오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오고 계신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가운데 “주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번 주, 두 가지를 실천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힘들고 아픈데 주님이 그냥 지나가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마음속으로 “주여”라고 외쳐보는 것입니다. 

둘째, 잠자리에 들기 전 시편 107편 29절, 시편 89편 9절, 욥기 9장 8절을 읽으며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을 묵상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복된 한 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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