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다윗의 도망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은 가장 먼저 놉 지방으로 갑니다. 놉 지방은 제사장들이 머물던 성읍입니다. 아마도 사울시대에는 성막이 놉 지방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다윗은 그곳에서 아히멜렉을 만납니다. 아히멜렉이 놉 지방의 대표 제사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1절을 보면 아히멜렉은 다윗을 떨면서 영접을 합니다. ‘떨다’라는 단어 하나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히멜렉은 다윗과 친분이 있습니다. 조금 뒤에 다윗이 골리앗을 칼을 이곳에서 찾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골리앗을 죽였던 칼을 이곳에 놔두면서 아히멜렉과 친분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히멜렉은 다윗을 떨면서 맞이했을까요? 아히멜렉은 사울과 다윗의 사이가 ‘이전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고 싶어 하고 다윗이 사울 몰래 ‘도망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때 아히멜렉이 다윗을 친절하게 맞아주면 이것은 사울에 대한 반역이 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윗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히멜렉으로서는 굉장히 무서운 순간입니다. 겉으로는 다윗을 도와주면 안 되는데 속으로 도와주고 싶으니까 말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다윗이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해서 제가 조용히 왔습니다”라고 아히멜렉에게 말합니다. 이미 우리는 다윗의 이 말이 거짓말인 것을 압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지금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눈치챘을 겁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는 굉장히 어색합니다. 왜냐면 지금 다윗은 매우 급합니다.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떡과 칼을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떡이 있습니까? 떡 주십시오. 칼이 있습니까? 칼 주십시오”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이렇게 어색하게 보이는 대화를 하는 이유가 7절에 있습니다. 바로 사울의 목자장인 도엑 때문입니다. 나중에 다윗이 도망자 생활을 할 때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사울에게 “다윗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울이 이스라엘 곳곳에 보낸 스파이입니다. 도엑이 바로 사울의 스파이입니다. 지금 다윗과 아히멜렉이 대화할 때 도엑이 듣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히멜렉 입장에서 드러내놓고 다윗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다윗도 도엑이 듣고 있으니까 아히멜렉에게 직접적으로 “도와달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히멜렉에게 “떡을 줄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이 말은 진짜 떡이 필요해서 “달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아히멜렉, 나는 사울이 죽이려고 해서 이곳까지 도망을 왔습니다. 지금 도엑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어서 돌려서 말합니다. 당신은 나를 지지해 줄 수 있습니까?’라는 의미입니다. 만약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떡을 주면 이것은 아히멜렉이 ‘다윗을 지지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떡을 주지 않으면 이것은 아히멜렉이 다윗을 ‘지지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다행히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떡을 줍니다.
이제 다윗은 아히멜렉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이곳에 온 진짜 이유를 아히멜렉에게 말합니다. 바로 칼입니다.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왕의 일이 급해서 서두르다 보니 칼과 무기를 놔두고 왔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도엑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골리앗을 칼을 줍니다. 칼을 받은 다윗은 블레셋 땅 가드로 갑니다.
다윗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의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여호수아서를 보면 라합은 거짓말로 정탐꾼을 도와주었고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살았습니다. 기브온 주민은 이스라엘을 속이고 그들과 조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브온 주님을 살려주셨습니다. 거짓말을 죄로 바꿔보면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도 죄를 지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리는 ‘아~ 거짓말을 해도 되나 보다. 죄를 지어도 괜찮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라고, ‘죄를 짓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요? 죄를 지을 수 있을까요? 대답은 “예”입니다. 그다음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해도 될까요? 죄를 지어도 될까요?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두 가지 질문이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질문입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연약함과 조리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거짓말을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지어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일부러 거짓말을 하거나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죄에서 멀어지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떡도 챙겼고 골리앗 칼도 챙겼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갑자기 블레셋 땅 가드로 망명을 하려고 합니다. 혹시 가드 하면 생각나는 사람 없습니까? 다윗과 싸웠던 골리앗의 고향이 바로 가드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도망하면서 놉 지역으로 간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처음부터 목적이 블레셋 땅 가드로의 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골리앗 칼을 챙겼을까요? 다윗은 블레셋 쪽에서 보자면 원수와 같습니다. 그런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을 가려면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도 망명 오는 다윗을 보고 ‘아~ 다윗이 우리한테 올만하구나’라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골리앗의 칼이었습니다. 다윗은 ‘내가 골리앗 칼을 들도 가드로 가면 가드왕과 신하들이 나를 받아주겠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갔습니다. 그때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보고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dl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합니다. 이때 다윗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도망자입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블레셋으로 도망갔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잘 알고 지내기를 원하십니다. 아마도 다윗은 스스로를 도망자라고 생각했겠죠. 실패자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다윗이 누군지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것도 아기스의 신하들 입을 통해서 말입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은 다윗에게 “그 땅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다윗이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아, 여기도 안전한 곳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다윗은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척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십니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향해서 ‘실패자, 낙심자, 절망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세상이 우리를 향해서 ‘연봉이 어떻고, 실력이 어떻고’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를 선택하였고 나는 너를 끝까지 지킬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 맞는 삶을 잘 살아야 하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은 15절입니다. 하지만 15절만까지만 보면 오늘 본문이 깔끔하게 끝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22장 1~2절을 보면 다윗이 아둘람 굴로 도망갔고, 그곳에서 400명이 다윗과 함께 모였습니다. 아둘람 굴은 유대 지역, 이스라엘 땅입니다. 22장 1절은 ‘그러므로’라고 시작합니다. 이 단어는 ‘그리고 나서’, ‘그후에’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즉, 우리가 오늘 함께 본 본문의 결론이 바로 22장 1~2절입니다.
첫 번째는 ‘선을 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때 선은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경계선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블레셋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삶에서 선을 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선을 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세상 사람과 똑같이 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죄에서 멀어진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 만약 우리가 선을 넘었다면 다시 돌아가면 됩니다. 비록 다윗이 거짓말하면서까지 블레셋으로 갔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이스라엘로 되돌아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낙심하거나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얼른 예배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얼른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가장 먼저 선 넘지 않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선을 넘었다면 얼른 돌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