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본문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 번째는 감옥에 있는 세례 요한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께 질문을 했고, 예수님은 이에 대해 대답하십니다. 두 번째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 대해 칭찬하신 내용입니다. 마지막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향한 세상의 반응과 그들의 태도를 다룹니다.
세례 요한은 감옥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께 “당신이 메시아 맞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과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아의 모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정치적 해방자나 심판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이사야 말씀을 통해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6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누군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깨닫고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세례 요한조차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고백했지만, 이제는 “이분이 정말 메시아가 맞을까?”라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구원은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질문에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났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크게 칭찬하십니다. 또한, 구약에 “엘리야가 올 것이다”라고 예언된 기록이 있는데, 세례 요한이 바로 그 엘리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어서 두 가지를 더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서 세례 요한보다 큰 사람이 없지만,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가 세례 요한보다 크다는 것은 이 땅에서보다 천국에서의 삶이 훨씬 더 풍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천국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리는 복이 훨씬 더 많다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마지막 인물로서 위대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고 누리는 복은 그보다 훨씬 더 큽니다.
두 번째는 “천국을 침노해서 빼앗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만드신 천국을 침노하거나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먼저 이 구절을 원어에 가깝게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힘있게 전진하며, 열정적으로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천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천국이 이 세상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천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천국은 단순히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열망하고 애쓰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다시 말해, 천국을 소망하며 천국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산다는 의미입니다.
이 구절의 두 번째 해석은 천국이 시작되면서 대적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예가 바로 지금 감옥에 있는 세례 요한입니다. 믿음을 지키며 사는 성도를 ‘세상이 괴롭히고 어렵게 한다’는 뜻입니다. 둘 중 어느 쪽 해석을 선택하든 성도는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데 열심을 내야 합니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이런 삶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17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여기서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을 추지 않는다”는 것은 세례요한에 대한 그들의 부정적 평가를 말합니다. 세례요한이 금욕적인 생활을 할 때 대적자들은 그런 세례요한을 믿지 않았고 그를 대적했습니다. 오히려 세례요한을 향해 “귀신이 들렸다”고 말합니다.
또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부정적 평가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먹고 마시며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대적자들은 오히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의 대적자나 예수님의 대적자가 동일합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사역을 하든지 그들은 부정적으로 여기고 비판할 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지혜”는 구원을 얻는 지혜를 말합니다. 즉, 지혜 있는 사람은 천국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을 통해 주어진 천국의 삶은 율법 아래에서의 삶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천국의 삶은 먹고, 마시며, 죄인의 친구가 되는 삶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를 말합니다. 교제 안에서 즐거워하며 동시에 예수님을 알아가는 삶입니다.
•죄인의 친구가 되는 것: 믿는 사람들과의 교제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도 좋은 친구가 되는 성도의 모습을 말합니다. 천국의 삶을 사는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도 잘 지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먹고 마시는 복을 누려야 합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