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우리가 비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는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큰 단점은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작게 보이는 단점을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은 우리에게 “비난하지 말라, 비방하지 말라, 판단하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이런 것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것도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가 판단하고 비교합니다. 그다음에 우리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결론을 가지고 교만해집니다. 반대로 ‘나보다 남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리면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러면서 공동체가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됩니다. 분쟁이 일어납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로 이렇게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전혀 판단을 하면 안 될까요?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다 받아들이고 그 사람이 무슨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을 해도 다 받아주어야 할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소그룹 리더를 정해야 할 경우, 혹은 교회에서 세례를 주거나 직분자를 택해야 할 경우에는 당연히 판단을 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은 그 판단 때문에 공동체에 분쟁이나 분열이 일어날 경우에 ‘판단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본성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갓난아기를 봐도 몸무게는 얼마인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는 아이가 자라면 자연스럽게 다른 아이들과 비교합니다. 때로 우리는 집은 얼마나 넓은지, 학교는 어디에 다니는지, 연봉이 얼마인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화의 단골 주제입니다. 더 좋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알아보고 비교하는 것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결국 이런 주제는 공동체 안에서 좋은 영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끼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본성이 악한 방향이 아닌 선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기도는 우리가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본문 12절은 참 어색한 결론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부담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선물을 하면 ‘아, 나에게 선물을 받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이 사람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우리의 선행은 무엇인가를 바라는 행동으로만 생각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선행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12절은 ‘받기 원하면 먼저 베풀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12절 마지막은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온 율법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