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께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이면서도, 그대로 순종하기 가장 어려운 말씀 중 하나일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원수를 미워하지 말라”거나 “원수를 때리지 말라”라고 하셨다면, 그런 말씀은 그래도 순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가 아닌 사람을 사랑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하시니 참으로 어렵게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손양원 목사님 같은 사랑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두 가지 의견 모두 의미가 있으며, 그렇게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원수가 누구인가?’와 ‘사랑이 무엇인가?’입니다. 이 두 가지가 먼저 잘 정리되어야, 우리가 말씀에 올바르게 순종할 수 있습니다. 먼저 원수가 누구인지 보려면, 우리 이웃이 누구인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구약에서 이웃은 공동체 안에 속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같은 민족, 같은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방인 일부도 이웃에 포함되었고, 구약의 마지막 부분과 신약에서는 믿지 않는 이들까지도 이웃에 포함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원수의 개념도 비슷합니다. 처음에 원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원수였으나, 이 개념도 점점 넓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나와 공동체의 대적이었지만, 나중에는 민족의 원수,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에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약 후기에는 성도를 박해하는 자들까지도 원수의 범주에 포함되었습니다. 더 확장하면, 성도를 제외한 모든 이가 원수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웃과 원수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웃과 원수는 상당 부분 겹칩니다. 이 부분을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과 원수는 분명히 다르지만, 우리가 그들을 대할 때는 공통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도 사랑해야 하고, 원수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신약성경에서 사랑은 네 가지 단어로 설명됩니다.
첫 번째는 아가페(Agape, ἀγάπη) 사랑입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감정보다는 의지에 기반한 선택적인 사랑으로, 특히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두 번째는 필레오(Phileo, φιλέω) 사랑입니다. 이는 우정이나 형제애와 같은 애정 어린 사랑을 말합니다. 상호적이고 친밀한 관계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세 번째는 스토르게(Storge, στοργή) 사랑입니다. 이는 가족 간의 자연스러운 사랑을 의미합니다. 신약에서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는 아닙니다.
네 번째는 에로스(Eros, ἔρως) 사랑입니다. 이는 로맨틱한 사랑이나 성적인 열정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 역시 신약에서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구약의 아가서에서 이와 같은 사랑이 묘사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사랑은 이 네 가지 중 첫 번째인 아가페 사랑입니다. 원수를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웃과 원수를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온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온전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온전함이 이 땅에서 ‘100%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고, 실수도 많으며,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방향은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내야 할 온전함입니다.
이 땅에서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며, 그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가는 온전함을 이루며 살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에게 상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