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에게 핸드폰이 필수입니다. 뉴스에서는 아이들이 ‘핸드폰을 늦게 사용하면 좋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늦게 사용하게 하는 일은 너무 어렵습니다. 핸드폰 사용은 아이들에게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허락해 주면서 하루 사용시간을 정해 주었습니다. 또 어플을 통해서 아이들의 핸드폰 사용 시간을 적절히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핸드폰을 조금 더 사용하려고 수를 씁니다. 하루는 아이들을 불러서 “아빠는 너희들을 항상 통제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너희들 핸드폰 사용 시간은 다 확인할 수 있으니까 정해진 시간 안에서만 사용해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작 아이들은 핸드폰 사용 시간을 잘 조절하지 못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본문에서 6,7번째 십계명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그 당시 유대인들은 두 개의 계명을 알고 있었고 열심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고 지켰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만 않으면 ‘괜찮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계명을 주신 목적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잘 지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확장하면 이웃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단지 몸으로만 간음하지 않으면 ‘괜찮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단지 그런 의미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순결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십계명을 알았는데도 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십계명을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 앞에서 지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마음부터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겉으로 순종하는 척만 했습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마음을 볼 수 없으니 그들은 겉으로만 말씀에 순종하는 척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계십니다. 우리의 행동도 보시지만 우리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마음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 앞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더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 수 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 앞에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