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어 두다 / Keeping the Door Open
나의 열심은 누군가에게 문이 되고 있습니까, 벽이 되고 있습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닐 만큼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천국 문 앞에 선 사람들의 얼굴 앞에서 문을 닫았습니다.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들까지 막았습니다.
오늘 우리 곁에도 문 앞에 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 교회에 온 분, 다른 나라에서 온 이웃, 신앙이 아직 낯선 가족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투와 순서와 분위기가 그분들에게는 높은 문턱일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을 알려 주고 싶은 마음도, 상대의 형편을 보지 못하면 벽이 됩니다.
이번 주 실천: 주일 예배 후, 처음 보는 얼굴이나 아직 잘 모르는 성도 한 분에게 먼저 다가가 이름을 묻고, 가르치기보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주님, 제 열심이 누군가를 막는 벽이 아니라 주님께로 이끄는 문이 되게 하소서. 문 앞에 선 사람의 얼굴을 먼저 보게 하소서.
저울을 다시 달다 / Re-weighing the Scales
하나님이 무겁게 여기시는 것을, 나도 무겁게 여기고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은 박하 잎까지 세어 십일조를 드렸지만, 율법의 더 무거운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습니다. 가장 작은 것은 걸러 내면서, 가장 큰 것은 삼켜 버렸습니다.
우리도 예배 순서와 봉사의 형식, 해야 할 일은 꼼꼼하게 챙기면서 옆자리 성도의 어두운 얼굴은 놓칠 수 있습니다. 시간과 돈을 쓸 때도, 일하고 공부할 때도, 가벼운 것이 어느새 무거운 자리를 차지하기 쉽습니다.
이번 주 실천: 하루를 정해 잠들기 전 “오늘 나는 무엇에 가장 많은 시간과 마음을 썼나?”를 적어 보고, 다음 날 정의와 긍휼과 믿음 가운데 하나를 위해 10분을 떼어 놓읍시다. 연락이 끊긴 지체에게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습니다.
작은 순종으로 큰 순종을 대신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무겁게 여기시는 것을, 저도 무겁게 들게 하소서.
텀블러 속을 내어 드리다 / Handing Over the Inside of the Cup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나는, 사람들 앞의 나와 얼마나 닮아 있습니까?
예수님은 “눈 먼 바리새인”에게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겉은 열심히 닦았지만, 자기 속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그 잔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겉은 닦을 수 있지만, 마음 깊은 곳까지 스스로 씻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결심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내 속을 숨기지 않고 주님 앞에 그대로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번 주 실천: 아침에 텀블러에 차를 담을 때마다 잠시 멈추어, 마음에 숨겨 둔 감정(원망, 욕심, 걱정) 하나를 주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립시다.
얼룩은 나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나를 씻으신 주님이 나를 정의합니다. 주님이 먼저 그 잔을 받으셨기에, 저는 오늘도 제 잔을 주님 앞에 내밉니다.
기도문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겉을 닦는 데 익숙한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열심이 벽이 되었던 순간들, 가벼운 것을 무겁게 들고 무거운 것을 놓쳤던 날들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저희 속을 저희 스스로는 다 볼 수도, 씻을 수도 없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주님, 겟세마네에서 그 잔을 내려놓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저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그 은혜로 저희를 씻어 주시고, 저희 교회가 문 앞에 선 사람들에게 활짝 열린 문이 되게 하소서. 저희의 저울을 다시 정의와 긍휼과 믿음 쪽으로 기울게 하시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주님 앞에서 겉과 속이 하나인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를 먼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