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설교
과자가 없어도 예수님을 찾으십니까?
마태복음 22:41-46 · 풍성한광염교회
1부부
우리 부부는 서로를 ‘필요할 때만’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이 문제, 돈 문제, 집안일이 생겨야 말을 건네고, 아무 일 없는 날에는 각자 휴대폰만 보는 날이 많습니다. 서로를 ‘해결해 주는 사람’으로만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부분으로만 알면 필요할 때만 찾게 되듯, 배우자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 갈수록 우리는 어떤 때에도 그분과 함께하고 싶어지고, 그분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듯이(요일 4:19) 서로를 먼저 찾아갈 힘도 거기서 나옵니다.
“필요할 때만이 아니라, 아무 일 없는 날에도 서로를 먼저 찾는 부부가 되게 하소서.”
부부가 서로의 필요를 채워 주는 관계를 넘어, 어떤 때에도 서로와 예수님을 함께 찾도록.
2신앙의 차이가 있는 배우자를 둔 분
나는 배우자에게 예수님을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으로만 보여 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힘들 때만 기도하고 교회를 찾는 모습이 배우자에게는 ‘아쉬울 때만 찾는 종교’로 보일 수 있습니다. 또 배우자가 예배에 함께하지 않으면, 사랑보다 잔소리가 먼저 나오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필요해서 찾아온 사람을 쫓아내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찾으셨듯이, 내가 먼저 배우자를 사랑으로 찾아가면 됩니다. 그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과 그 사람만 압니다. 기쁠 때나 힘들 때나 예수님을 찾는 삶이 가장 조용한 증거입니다.
“배우자를 예배로 이끌려 애쓰기 전에, 어떤 때에도 예수님을 찾는 제 삶으로 먼저 사랑을 보여 주게 하소서.”
배우자가 나의 열심이 아니라, 좋을 때도 힘들 때도 예수님을 찾는 나의 삶을 통해 그분을 알아 가도록.
3초등 이하 자녀를 둔 부모
우리 아이에게 예수님은 ‘들어주시는 분’으로만 알려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시험 전에, 아플 때, 갖고 싶은 것이 있을 때만 “예수님께 기도하자”고 하고, 평소에는 예수님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과자를 주는 사람으로 저를 알던 영아부 아이처럼, 아이도 처음에는 그렇게 알아 갑니다.
과자를 받으러 온 아이도 우리는 반갑게 맞습니다. 필요해서 찾는 것도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아이가 평생 그렇게만 안다면 아쉬운 일입니다. 아무 일 없는 날에 한마디, “예수님, 오늘도 함께 계셔서 감사해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기도가 아이에게 예수님을 ‘함께 계신 분’으로 알려 줍니다.
“아이에게 예수님을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으로만 가르치기 전에, 함께 계신 분으로 먼저 보여 주는 부모가 되게 하소서.”
자녀가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필요할 때만 찾는 분이 아니라, 함께 있고 싶은 분으로 알아 가도록.
4중고등 이상 자녀를 둔 부모
자녀가 힘들 때만 예수님 이야기를 꺼내고, 평소에는 “교회 갔니?”만 묻고 있지는 않습니까?
시험, 진로, 친구 문제로 힘들어하는 자녀에게 “기도해라”, “교회 가라”고 말하다가도, 평소에는 신앙 이야기가 없는 날이 많습니다. 자녀는 신앙을 위기 때 쓰는 비상약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만 찾는 분으로 알면 평소에는 멀어집니다. 자녀에게 가장 큰 가르침은 부모가 기쁠 때도 힘들 때도 예수님을 찾는 모습입니다. 자녀의 일이 잘 풀린 날, 부모가 먼저 “예수님께 감사하자” 하고 말하는 한 번이 큰 힘이 됩니다.
“자녀가 힘들 때만이 아니라, 기쁜 날에도 함께 예수님께 감사하는 부모가 되게 하소서.”
자녀가 예수님을 비상약이 아니라, 기쁠 때나 힘들 때나 함께 있고 싶은 분으로 만나도록.
5미혼 성도
나는 어떤 때에 예수님을 가장 먼저 찾습니까? 불안할 때만, 외로울 때만은 아닙니까?
미래가 불안하거나 외로울 때, 취업이나 관계가 풀리지 않을 때는 간절히 찾다가도, 일이 잘 풀리면 바빠서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혼자 지내다 보면 필요할 때만 찾게 되기도 합니다.
힘들 때는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기쁠 때는 주인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찾게 됩니다. 가장 가까이 계신 분은 필요가 없는 날에도 곁에 계십니다. 이번 주에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한 번 찾아가 보십시오.
“불안할 때만이 아니라, 일이 잘 풀리는 날에도 예수님을 먼저 찾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외로움과 불안 속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의 기쁨 속에서도 예수님과 동행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