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맹인입니까?
주일 설교가 각자의 자리로 이어지도록, 다섯 가지 삶의 자리를 위한 짧은 묵상을 준비했습니다. 나에게 해당하는 자리를 찾아 읽고, 한 주간 이 질문과 고백을 품어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구하고, 함께 따르기
우리 부부가 함께 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을 구하는 마음이 서로를 예수님께 더 가까이 데려가고 있습니까?
부부는 종종 같은 것을 구합니다. 더 넓은 집, 자녀의 성공, 안정된 노후.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도 두 아들을 위해 구했습니다 — 자리를, 왕관 곁의 위치를. 그 마음은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정작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두 맹인은 부부가 아니었지만, 함께 걷고 함께 외쳤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함께 구했고, 함께 눈을 떴고, 함께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부부의 신앙도 이래야 합니다 — 같은 것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 부부가 함께 구하는 기도 제목이 하나님 나라를 향하게 하소서
- 서로의 신앙을 격려하며 함께 걷는 부부 되게 하소서
포기하지 않고 부르짖기
배우자가 아직 눈을 뜨지 못한 것 같아 보일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 곁에 있습니까?
믿지 않는, 혹은 신앙의 결이 다른 배우자와 함께 사는 것은 외로운 길입니다. 오늘 본문의 두 맹인 곁에도, 그들을 "조용히 하라"며 막아선 무리가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오히려 믿음의 걸음을 가로막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 맹인은 무리의 꾸짖음에도 더 크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외침을 들으시고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배우자를 바꾸는 것은 내 몫이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고 부르짖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배우자의 마음이 예수님을 향해 열리도록
- 조급함이나 정죄가 아닌, 인내와 사랑으로 배우자를 대하도록
무엇을 구하라고 가르칠 것인가
내 아이에게 나는 무엇을 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자리입니까, 예수님입니까?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구합니다. 건강하게, 똑똑하게, 남들보다 앞서게.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무리는 어린아이를 막았던 바로 그 손으로 맹인을 또 막았습니다. 어른들의 조급함이 가장 약한 이들의 부르짖음을 막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이든 맹인이든, 부르짖는 이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걸음을 멈추고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 질문을 가르쳐야 합니다 — 세상이 주는 것보다, 예수님을 아는 것을 구하라고.
- 자녀가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 부모가 먼저 무엇을 구하며 사는지 자녀에게 본이 되도록
성공보다 먼저 구할 것
자녀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면서, 나는 자녀가 예수님을 따라가기를 함께 구하고 있습니까?
자녀가 자라면서 부모의 기도는 점점 구체적이고 절박해집니다. 성적, 진로, 대학, 관계. 두 맹인이 구했던 것은 단순했습니다 — 그저 보게 해달라는 것. 그런데 그 단순한 구함이 시력 이상의 것, 곧 "제자의 눈"으로 이어졌습니다.
자녀를 위한 기도가 세상의 성공만을 향해 있다면, 자녀는 눈을 뜨고도 여전히 왕관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부모의 기도가 자녀를 예수님을 따르는 걸음으로 이끄는 기도이기를 바랍니다.
- 자녀가 스스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따르기로 결단하도록
- 부모의 기도가 세상적 기준을 넘어 자녀의 신앙을 향하도록
받은 다음, 어디로 걷는가
지금 내가 가장 간절히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을 구하는 나의 걸음은 예수님을 향해 있습니까?
미혼의 시기에는 구하는 것이 뚜렷합니다 —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안정된 삶. 이것들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묻습니다. 그것을 받은 다음, 나는 어디로 걷고 있는가.
두 맹인은 눈을 뜨자마자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구한 것을 받고 나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혼의 시기에 구하는 것들을 받게 될 때, 그 순간이 신앙의 끝이 아니라 예수님을 더 따라가는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 미혼의 시기를 통해 먼저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도록
- 구하는 것을 받았을 때 신앙이 흐려지지 않고 오히려 더 견고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