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제가 계산할게요 (마태복음 19:23~30)
언젠가 목사님들, 성도님들과 뷔페 식당에 간 적이 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한 목사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늘 제가 전부 계산하겠습니다. 마음껏 드세요.” 누군가 나 대신 계산해 주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는 정반대의 계산이 있습니다. 서로 내겠다는 계산이 아니라, 받아내려는 계산입니다. 직장에서 ‘내가 이만큼 했는데’ 하는 마음, 가정에서 ‘내가 이만큼 참았는데’ 하는 마음. 신앙에서도 그렇습니다. 저는 청년 때 “하나님, 아무리 봐도 저 친구보다 제가 더 믿음으로 사는 것 같은데 왜 저 친구는 결혼하고 저는 혼자입니까?”라고 원망 섞인 기도를 한 적도 있습니다. 지난주 우리는 ‘받았기 때문에 한다’고 배웠는데, 한 주 살아보니 어떠셨습니까. 왜 우리는 계산을 멈추지 못할까요.
오늘 본문은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떠난 직후의 장면입니다. 그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흔히 예루살렘에 ‘바늘귀’라는 작은 문이 있어서 낙타가 짐을 내리고 무릎을 꿇으면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런 문은 없었습니다. 중세에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하면 가능하다”가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돈의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재물은 사람에게 “너는 네 힘으로 살 수 있어”라는 거짓 확신을 주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게 되는 우상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서지 못하게 만듭니다. 아브라함도 욥도 부유했습니다. 문제는 재물이 내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입니다.
제자들이 극도로 놀라 묻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당시 부자는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 눈에 보이는 점수판의 1등으로 여겨졌습니다. 1등도 떨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는 절박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판을 더 키우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부자만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도 스스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불가능 선언이 절망이 아니라 복음의 문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내 편에서 불가능하기에, 하나님 편에서 하십니다. 부요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스스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고후 8:9).
그때 베드로가 입을 엽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지난주 청년은 지킨 것을 내밀었는데, 이번에 베드로는 버린 것을 내밉니다. 내가 한 것과 내가 받을 것을 연결하려는 같은 계산법입니다. 버림조차 실적이 될 수 있습니다. 희생조차 계산서가, 헌신조차 청구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은혜를 배우고도 일주일 만에 다시 점수를 세고 있는 우리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꾸짖지 않으시고 상상 이상의 약속으로 답하십니다. 열두 보좌, 여러 배, 영생. 다만 약속의 중심을 보십시오. “나를 따르는 너희”, “내 이름을 위하여 버린 자.” 보상의 중심에는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고 이 보상은 받아내는 품삯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자녀에게 베푸시는 넘치는 은혜입니다. 배를 버린 어부에게 열두 보좌라니, 계산이 안 맞습니다. 은혜는 원래 계산이 안 맞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은혜의 나라에서는 자신이 먼저라고 여기는 사람이 나중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신 분이 그 길을 몸으로 걸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누가 먼저인지 계산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십자가를 향해 가고 계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선언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우리 죄가 받아야 할 심판, 우리가 영원히 갚을 수 없던 그 계산서를 대신 담당하셨다는 선언입니다. 뷔페 식당 입구의 그 말을 우리 인생을 향해 하신 분이 계십니다. “제가 계산했습니다. 마음껏 누리십시오.” 누가 이미 계산을 다 해놓은 식당에서 우리는 계산대 앞을 서성이지 않습니다. 눈치 보며 얼마 먹었는지 세지도 않습니다. 감사히 먹고, 그분을 따라 나갑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계산은 끝났습니다. 이제 따라 나가면 됩니다.
계산하는 사람은 자꾸 순서를 따집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순서를 잊고 주님을 따릅니다. 이번 한 주, 이 질문 하나를 붙잡으십시오.
“나는 지금 감사로 하고 있는가, 계산하며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