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잘 하려고 하면 멀어집니다 (마태복음 19:13~22)
제자훈련을 한참 받던 시절, ‘하루 경건의 시간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성경 몇 장 읽기, 기도 몇 분 하기, 암송 몇 개 하기. 표에 적어놓고 하나씩 체크했습니다. 처음엔 좋았습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암송하는 제 자신이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쁨보다 그 칸을 채우는 일 자체에 마음이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칸을 채우지 못하면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열심히 할수록 부담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저는 분명, 잘하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청년입니다. 같은 예수님 앞에 왔는데,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난 두 장면을 함께 보겠습니다.
먼저 예수님께 어린아이들이 옵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눈으로 아이를 봅니다. 귀엽고, 순수하고, 그 존재만으로 사랑스럽다고. 그런데 예수님 당시엔 전혀 달랐습니다. 아이는 지위도, 드릴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에서도 “여자와 아이들 외에” 오천 명이라 말할 만큼, 숫자에도 들지 못하던 존재였습니다. 제자들은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를 꾸짖었습니다. “이런 아이들 때문에 예수님이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허락하라. 막지 말라.” 그리고 손을 얹으셨습니다. 아이들이 한 일은 없습니다. 그저 데려와졌고, 그저 받았습니다.
곧이어 청년이 옵니다. 젊고, 부유하고, 계명을 흠 없이 지켜온 사람입니다. 회당의 지도자였다고도 하니, 누구보다 신앙에 열심이었던 사람입니다.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로 잘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가 묻습니다.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이 계명을 말씀하시자 청년은 “이 모든 것을 지켰나이다” 대답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가지를 더 요구하십니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재물을 붙든 손을 끝내 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두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선명해집니다. 아이들은 철저히 수동적입니다. 자신이 한 일이 없습니다. 청년은 철저히 능동적입니다. 달려오고, 묻고, 대답하고, 결국 스스로 판단해 떠났습니다. 열심히,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영생을 얻어내려 했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자리에서 사람은 철저히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움직이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받을 뿐입니다. 청년의 문제는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나쁜 의도도 아니었습니다. 순서가 반대였을 뿐입니다. 그는 받기 위해 행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받지 못했습니다.
15절을 다시 보십시오. 예수님이 아이들에게 안수하실 때, 그들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도 모르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손을 얹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자격을 만들기 전에, 계명을 지키기 전에, 잘 하기 시작하기 전에 — 예수님이 먼저 오셨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갈 4:4) — 우리가 준비됐을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그때에, 이미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움직이기도 전에, 우리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이미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자녀가 되기 위해, 구원을 받기 위해 더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자격 없는 나를 구원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말씀 안에서 일상 안에서 계속 깨닫고 또 깨닫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이 쌓일 때, 우리 안에 새로운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잘 해야 합니다.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봉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순서가 있습니다. 청년의 순서는 ‘하고 → 받는다’였습니다. 아이들의 순서는 ‘받고 → 한다’였습니다. 겉으로는 똑같아 보여도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받은 사람은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사해서 합니다. 자격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받았기 때문에 합니다. 지쳐서 멈추지 않고, 계산이 맞지 않아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멈추지 않습니다. 받은 것이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청년처럼 잘 해서 받으려 하면 멀어집니다. 아이들처럼 먼저 받으면, 잘 하게 됩니다. 은혜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닮아가게 만듭니다.
이번 한 주, 이 질문 하나를 붙잡으십시오.
“나는 지금 받기 위해 하고 있는가, 받았기 때문에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