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결핍의 시간, 은혜로 날아오르는 구원 상담
1. 인생의 해충 박멸이 아닌 ‘구원 상담’
과거 한 유명 보안업체 게시판에 절망 섞인 글이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자신을 ‘삼수벌레’라 비하하던 한 수험생은 “집에서 밥만 축내는 나 같은 벌레도 잡아주느냐”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때 관리자는 뜻밖의 답변을 남겼습니다. “저장식품 해충 중 ‘화랑곡나방’은 환경에 따라 유충 기간을 2주에서 300일까지 스스로 조절합니다. 지금은 남들보다 조금 늦을 수 있지만, 성충이 된 후의 모습은 남들과 똑같으니 부디 기운 내십시오.”
그로부터 수년 후, 이 청년은 다시 나타나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 답변 덕분에 힘을 얻어 지금은 결혼도 하고 직장도 잘 다니며 또래보다 앞서 나가기도 합니다.” 자신을 벌레라 비하하던 청년은 해충 박멸이 아닌 ‘인생 상담’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께 ‘이혼’이라는 인생의 문제를 들고 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날 선 질문을 도리어 ‘구원’이라는 근본적인 답을 주시는 ‘구원 상담’의 기회로 삼으십니다. 과연 주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구원 상담은 무엇일까요?
2. 함정을 넘어 창조의 원형으로
바리새인들이 함정을 파고 묻습니다.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아내와 이혼해도 괜찮습니까?” 당시 유대 사회는 이혼을 쉽게 허용하자는 힐렐 학파와 엄격히 제한하자는 샴마이 학파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쪽을 택하든 한쪽의 반발을 사게 하려는 악한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논쟁에 휘말리지 않고 창조의 원형으로 돌아가십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결혼의 본질을 네 가지로 정리하십니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며, 부족한 ‘사람’끼리의 만남이고, 부모를 떠난 독립적 책임의 만남이며, 결국 ‘한 몸’을 이루는 신비로운 연합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말씀은 단지 윤리적 지침을 넘어섭니다. 성경에서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 즉 ‘구원’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으신 그 구원의 연합은 인간의 변덕이나 환경의 변화로 결코 취소되거나 끊어지지 않는다는 강력한 선포입니다.
3. 완악함과 십자가의 복음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이혼 증서를 근거로 반박하자, 주님은 그것이 인간의 ‘완악함’ 때문에 허락된 것이라 답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은 본래의 창조 질서를 지킬 실력이 없음을 꼬집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핵심을 만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아닌 우상을 섬기며 끊임없이 영적 음행을 저지른 ‘완악한 신부’였다고 말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이혼 증서를 받고 쫓겨나야 마땅한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하지만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버리는 대신 십자가를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깨뜨린 연합의 대가를 친히 치르시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구원은 우리가 완벽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죽기까지 우리를 놓지 않으셨기에 완성된 것입니다.
4. 제자들의 절망과 은혜의 필연성
엄중한 기준 앞에 제자들이 절망하며 말합니다.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 거룩한 연합을 단 하루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인간의 도덕성이나 의지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고백입니다.
결혼 생활도, 구원받은 성도의 삶도 내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일상에서 “주님, 저는 사랑할 실력이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오늘도 나를 붙들어 주셔야만 내가 살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겸손이야말로 성도가 살아가는 힘입니다.
5. 결핍, 하나님이 안아주시는 자리
마지막으로 주님은 ‘고자(결핍)’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유대 사회에서 고자는 미래와 열매가 없는 인생의 상징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세 가지 결핍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십니다.
첫째, 선천적 결핍(태로부터 된 결핍)입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환경 때문에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56장은 약속합니다. 결핍이 있을지라도 언약을 굳게 잡는 자들에게는 자녀보다 나은 영원한 기념물을 주시겠다고 말입니다. 구원은 내가 무엇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함 그 자체입니다.
둘째, 타인과 환경에 의해 강요된 결핍입니다. 세상은 성과가 없으면 우리를 실패자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건이 아닌 우리의 ‘자리’를 보십니다. 타인에 의해 꿈이 꺾였을지라도 여전히 말씀 안에 머물려 애쓴다면, 주님은 그 결핍의 공간을 가장 큰 은혜로 채워주십니다.
셋째, 스스로 선택한 결핍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는 ‘자발적 결핍’입니다. 내 자존심을 세우고 싶어도 먼저 사과하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도 화평을 위해 참는 실력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비울 때, 비로소 그 자리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가득 채워집니다.
6. 결론: 은혜로 날아오르는 일상
성도 여러분, 인생의 결핍 때문에 자신을 벌레처럼 여기고 계십니까? 어떤 이유로 시작된 결핍이든 상관없습니다. 그 결핍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과 우리가 가장 뜨겁게 연합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십니다.
나의 완악함을 인정하고, 내 힘으로 살 수 없음을 고백하며,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구하십시오. 우리의 결핍을 부끄러움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영광’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구원 상담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결핍은 결코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가장 뜨겁게 안아주시는 은혜의 장소임을 기억하며 이번 한 주도 당당하게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7. 적용
1. 아침 기도: “주님, 제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2. 관점 바꾸기: 나의 결핍을 볼 때마다 “이곳이 주님의 은혜가 머물 빈 공간입니다”라고 선포하기.
3. 거룩한 포기: 하나님 나라의 화평을 위해 이번 주 딱 한 번만 내 자존심이나 권리를 양보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