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6 칼럼
평범한 하루의 제자도

 I. 천국과 지옥을 오간 하루

1976년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열린 축구 경기는 역사상 가장 독특한 무승부 경기로 기록되었습니다. 최종 스코어는 2:2. 그런데 이 네 골을 모두 넣은 선수는 단 한 명, 크리스 니콜이었습니다. 그는 자책골과 동점골, 그리고 또 한 번의 자책골을 넣은 뒤 경기 종료 4분 전에 다시 골을 넣어 기어이 무승부를 만들었습니다. 한 경기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간 이 선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마태복음 16장에는 이 선수처럼 순식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입니다.

이야기는 제자들과 함께 우상 숭배와 이방 신전이 가득한 가이사랴 빌립보로 가셨을 때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말하는데,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인류 구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앙고백을 터뜨렸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반석이다”, “천국 열쇠를 줄 것이다”라고 극찬하시며 베드로를 하늘의 영광으로 치켜세우셨습니다. 베드로는 분명 이 순간 천국에 있는 듯했을 것입니다. 이 놀라운 고백은 단순한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모든 제자의 마음을 대표하는 신앙의 정수였습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이 자신이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 곧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이해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곧이어 21절에서 다음과 같이 폭탄선언을 하십니다.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메시아의 영광을 한껏 기대하던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청천벽력과 같았습니다. 베드로는 즉시 예수님을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강하게 만류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천국의 반석이라 칭찬받은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베드로는 예수님께로부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호된 꾸지람을 듣고 지옥으로 떨어진 듯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왜 사탄이라고 불렸을까요?

베드로의 만류는 단순히 스승을 아끼는 인간적인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이 당시 제자들은 랍비가 간 길을 그대로 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과 죽음의 길을 예고하신 것은 베드로 자신을 포함한 제자들 역시 고난받고 죽을 수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힘과 영광을 쟁취하여 로마를 무너뜨리고 높은 자리를 달라’고 요구하며, 예수님께서 반드시 걸으셔야 할 ‘고난받는 종(이사야 53장)으로서의 메시아의 길’을 막아섰습니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일이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구속 사역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영광과 권력을 얻으려는 인간적인 욕망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걸림돌이 되려 했기에, 예수님은 그를 사탄의 통로라며 엄히 책망하신 것입니다.

 II.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무엇이 주님의 길을 막는가?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정확히 지적하셨습니다. 제자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따라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은 어떻게 구분될까요?

우리는 흔히 ‘사람의 일’이라고 하면 돈 버는 일, 승진, 좋은 차나 집을 갖는 일 등 물질적인 욕심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설교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런 것들 자체가 죄악인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일’이란, 그 모든 행위와 욕망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걸림이 되는 것, 방해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돈을 얼마를 버는가, 몇 평짜리 집에 사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아닙니다. 내가 열심히 추구하는 그 어떤 것 때문에 예배의 자리에 지속적으로 빠지고, 하나님과 멀어지며, 말씀과 멀어진다면 바로 그것이 ‘사람의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내 삶에서 이루시려는 구원과 성화의 길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선한 행동조차 ‘사람의 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교회 봉사, 전도, 구제, 심지어 설교를 하는 일까지도 ‘하나님의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준을 통해 우리 삶의 모든 행위를 점검해야 합니다.

1.  공동체의 유익과 그리스도의 드러남: 내가 하는 일이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고 성도들을 세우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알게 하는가? 만약 봉사와 구제가 오히려 사람들을 싸우게 만들고 교회를 분열하게 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일일 확률이 높습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사용하는가: 두 번째 기준은 ‘내가 하나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느냐?’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하나님의 일)에 참여했지만, 그 속내는 ‘로마를 무너뜨리고 높은 자리(사람의 일)를 차지하려는 욕망’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사조차 설교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려 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의 일’이 되고 맙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자의 삶의 근본적인 목적입니다.

 III. 제자도의 세 가지 명령: 결단에서 지속으로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신 후, 제자들에게 제자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명확히 선포하십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은 제자의 삶의 세 가지 조건을 명령합니다.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 세 가지 동사는 제자도의 여정을 논리적인 단계로 보여줍니다.

# 1. 자기를 부인하라 (ἀπαρνησάσθω): 결정적 결단

첫 번째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승자강(自勝者強)이라는 말처럼, 내 안에 있는 망가진 본성, 즉 죄 된 욕망에 이끌리는 삶을 살지 않기로 단호하게 결단하는 행위입니다. 헬라어 문법상 단순과거 명령형으로 쓰인 이 동사는 단 한 번, 결정적인 선언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읽으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할 때, 우리는 내 삶의 주인이 ‘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기 부인의 결단을 확정하는 것입니다.

# 2. 자기 십자가를 지라 (ἀράτω): 고난을 감수하는 결심

두 번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당시 사형수가 짊어져야 했던 형벌 도구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했을 때, 그 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모든 어려움과 고난과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의미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세상적인 이득, 감수해야 할 손해, 받아들여야 할 멸시까지도 모두 십자가에 포함됩니다. 우리는 이 결심을 단회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선언으로 해야 합니다.

# 3. 나를 따르라 (ἀκολουθείτω): 평범한 하루의 지속적인 추종

앞선 두 가지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단회적인 결단이었다면, 마지막 ‘나를 따르라’는 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명령입니다. 헬라어 문법상 현재 명령형으로 쓰인 이 동사는 끊임없이, 습관적으로 추종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현재성(聖化)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기에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으므로, 그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이 일상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제자로서의 삶을 아프리카 선교 현장에서의 극적인 위험 극복이나, 대중 앞에서 행하는 대단하고 엄청난 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대부분 평범한 일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면, 우리는 대부분 만났던 사람을 만나고, 했던 일을 비슷하게 반복했습니다. 특별한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제자는 특별한 날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에 드러납니다.

* 오늘 맡겨진 일을 정직하게 하는 것,

*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

이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IV. 목숨을 얻는 생명의 길

우리가 제자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살면,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못하는 것 같아 불안하고, 손해 보는 것 같고, 심지어 망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이 길을 가야 할까요?

예수님은 25, 26절에서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십니다.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세상의 방식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고, 하고 싶은 것 하며 사는 삶은 당장은 편할지 모르나, 예수님은 그것이 “목숨을 잃는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반면에 힘들고 괴롭고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제자로서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바로 “생명의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의 삶에는 분명 고난이 있지만, 그 안에는 예수님이 주시는 감사와 평안,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때는 현재, 지금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미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기로 선언하신 여러분은 이제 제자로 오늘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집중하십시오. 오늘 해야 할 작은 일 하나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정직하게 하고, 오늘 내 곁에 있는 한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과 도움을 전하십시오.

특별한 날이 아닌, 평범한 하루 속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통해 목숨을 찾는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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