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 칼럼
사진: Unsplash의Alexandra Golovac

1. 들어가는 말: 표적을 대하는 두 가지 반응
만약 아들이 반에서 항상 꼴찌를 하다가 중간고사에서 갑자기 2등을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부모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정말 잘했다. 네 노력이 결실을 맺었구나”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너 혹시 커닝했니? 평소 같지 않네”라는 부정적인 반응입니다.

예수님 주변에도 이와 똑같은 반응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표적과 기적을 보고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고백하는 이들이 있었던 반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고 모든 것을 부정하며 견제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극과 극의 반응은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는 태도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2.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표적 요구의 본심
마태복음 16장 1절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연합하여 예수님께 나아왔다고 기록합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키려 했던 평범한 유대인 집단이었고, 사두개인은 헬라 문화를 선호하고 부활과 천국을 믿지 않았던 권력층이었습니다. 이 둘은 교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상극이었지만, 예수님의 영향력이 커져 예루살렘으로 가까이 오시자 공동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로 손을 잡은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요구한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었습니다. 이는 구약의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이 내리거나, 여호수아처럼 태양이 멈추는 것과 같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기적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은 얼마 전에 칠병이어와 오병이어의 기적을 비롯해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들이 이런 기적들을 보고도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 모든 일을 ‘표적이 아니다’라고 부정하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예수님을 넘어뜨리려는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본심을 꿰뚫어 보시고 4절에서 그들을 향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단호하게 책망하십니다. 성경에서 ‘음란하다'(간음하다)는 표현은 단순한 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사용되는 영적인 배신 행위를 가리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산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욕심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가짜 신, 즉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들이 원하는 표적을 보여주어 예수님을 조정하고 이용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악한 의도를 아셨기에,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표적은 단 하나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3. 유일하고 영원한 표적: 요나의 표적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원하는 표적 대신, 그들에게 가장 핵심적인 표적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나의 표적”입니다(4절).

요나의 표적은 마태복음 12장에서 이미 설명되었듯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는 것을 예표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원했던 것은 이 땅에서 그들의 세력을 공고히 해주고, 정치적·경제적 만족을 줄 수 있는 표적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땅의 삶이 전부였고,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분명히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권력이나 만족이 아니라, 죄를 이기고 사망을 깨뜨린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을 잘 살기를 축복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영원한 생명을 포기할 만큼 가치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부활이야말로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표적입니다.

4. 제자들의 작은 믿음: 먹는 빵에 대한 염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떠나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갈 때, 제자들은 빵을 하나밖에 챙기지 못한 사실을 깨닫고 심하게 염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빵 담당이 누구인지, 점심은 뭘 먹어야 하는지 조용히 서로 다투며 불안해했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빵을 하나밖에 준비하지 못해서 예수님이 화가 나셨구나”, “누룩이 넉넉히 들어 부드러운 빵을 준비하라는 말씀이구나”라고 오해했습니다. 즉, 제자들은 여전히 눈앞의 ‘먹는 빵’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의 이 모습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로 저번 주에 그들은 빵 일곱 개로 남자 4,000명을 먹이시는 칠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전에는 빵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도 목격했습니다. 빵이 계속 늘어나고 물고기가 계속 생겨나는 그 놀라운 광경을 눈앞에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자신들 열세 명에게 빵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에 또다시 먹을 것 걱정에 빠져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돈, 집, 자녀, 건강 등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이 부족할 때 우리는 걱정하고 염려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빵 걱정을 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우리가 현실적인 필요로 인해 걱정하는 것을 ‘믿음이 작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5. 믿음의 오해와 염려의 본질
우리는 믿음에 대해 두 가지 극단적인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시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입니다. 우리는 분명 전능하신 예수님의 돌보심 아래 살아가지만, 이 땅에서 몸을 가진 존재로서 필요한 것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에서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필요한 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열심히 사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성도의 의무입니다.

둘째는 돈이나 성공이 곧 복의 기준이라는 생각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가난하거나 자녀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한 불쌍한 인생’이라고 단정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잘 사는 것도 복이지만, 그렇지 않은 모든 분들이 복 받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서 필요한 것들이 성도의 궁극적인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걱정한 ‘먹는 빵’은 바로 이 땅에서 살아갈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이 작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이 땅의 부족함 때문에 영원한 것을 포기하고 놓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이 부족할 때, 그 어려움 때문에 예배의 자리에서 멀어지고, 말씀을 듣는 것을 소홀히 하며, 교회 공동체에서 빠지는 행동. 이것이 바로 믿음이 작은 것입니다. 우리 삶을 끝까지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6. 생명의 빵과 죽음의 누룩
제자들이 마침내 깨달은 예수님의 말씀은 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예수님이 경고하신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는 성분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악하고 음란한 가르침(교훈)이었습니다. 이 악한 교훈은 우리의 삶이라는 반죽에 들어가면 우리를 우상숭배로 이끌어 영적으로 죽이는 독이 든 빵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죽음의 누룩이 들어간 빵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먹어야 할 빵은 요한복음 6장 35절이 증언하는 바로 그 빵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 6:35, 새번역)

우리가 성찬식에서 고백하듯이, 예수님 자신이 바로 우리의 영생을 책임지시는 빵입니다. 예수님이 진리이시기에 이 빵이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7. 결론: 영생의 빵을 먹는 삶
일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는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영적으로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문제, 염려, 부정적인 과거와 생각을 먹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매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빵을 먹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매일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깨닫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내 감정, 의지, 습관, 자존심을 내려놓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빵을 먹는 행위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가지 핵심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삶을 전적으로 책임지시는 예수님께 모든 염려와 문제를 기도로 맡기십시오. 돈이 부족하든, 관계가 깨졌든, 마음이 아프든, 전능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책임져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매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빵을 먹으십시오. 이 빵을 먹음으로써 우리는 생명력 있고 힘차고 열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번 주 적용을 위한 권면:

기도와 메모: 이번 주에는 나의 문제와 아픔을 해결하실 수 있는 예수님께 기도로 나아가되, 단순히 기도만 하지 않고 기도하면서 메모를 하며 구체적으로 맡겨 드립시다.

생명의 빵(말씀) 먹기: 매일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읽고 하루 종일 그 말씀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빵을 먹으며 승리하는 한 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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