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9 칼럼
사진: Unsplash의Katya Azimova

1. 들어가는 말: 예상치 못한 은혜
제가 운동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가끔씩 회원들끼리 작은 대회를 열기도 하고, 당연히 상품도 빠질 수 없죠. 그런데 한번은 대회를 하는데 회원 한 분이 참가한 모든 이에게 매우 값진 물건을 참가상으로 주셨습니다. 저도 그 상품을 받았지요. 교회 성경 퀴즈 대회를 준비하면서 ‘이 상품을 우리 성도님들의 참가상으로 드리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회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이 물건을 조금 더 구입할 수 있을까요? 교회 행사용이니 저렴하게 해 줄 수 있으면 해 달라”고 말이죠. 그랬더니 그분이 저에게 깜짝 놀랄 만한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목사님, 안 그래도 이 상품을 목사님께 어떻게 할지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원하시면 그냥 드릴 수 있습니다” 다음 주에 그 놀라운 참가상이 무엇인지 꼭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에는 이처럼 예상치 못한 만남과 예비된 은혜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놀라운 일을 베푸십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그런 기적의 만남을 이룬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가나안 여인입니다. 이방 여인으로서 그녀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을까요? 그녀에게 어떤 기적이 일어났을까요? 우리는 이 만남을 통해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할 믿음의 진리를 함께 깊이 깨닫고자 합니다.

2. 배경: 금지된 땅 두로와 시돈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근처 게네사렛에서 사역하시다가, 돌연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지도를 보면, 이 지역은 예수님 사역의 중심지인 갈릴리에서 서북쪽으로 약 100km나 떨어진 먼 곳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단순히 지리적으로 먼 곳을 넘어, 영적으로 금기시되는 이방인의 대표적인 도시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의 땅을 밟는 것, 그들과 접촉하는 것은 율법적으로 부정한 일이자 비난받을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땅을 밟는 것조차 피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모든 금기와 관습을 깨고, 가장 먼 이방 땅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곳으로 가셨을까요? 본문은 침묵하지만, 그곳에 간절히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한 영혼, 곧 가나안 여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이스라엘 울타리를 넘어 온 세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3. 찾아오시는 예수님과 나아가는 용기
마태는 굳이 그녀를 ‘가나안 여인’이라 기록합니다. 가나안은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원수였습니다. 그녀는 유대인에게 멸시받는 이방 여인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습니다”라고 크게, 그리고 여러 번 외치며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저는 이 절박한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누가복음의 삭개오를 떠올립니다. 삭개오는 유대인이었지만 세리장이라는 직업 때문에 동족에게 따돌림당하는 외톨이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려고 체면도 잊은 채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가나안 여인과 삭개오의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절망 가운데 있을 때, 그들은 오직 예수님만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갈 때 “이방 여인이 함부로 유대인에게 가느냐”라는 비난을 들었을 것이고, 삭개오가 나무 위에 오를 때 “세리장이 뭐 하는 짓이냐”라는 핀잔을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간절함은 세상의 시선을 압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을 짓누르는 아픔과 문제는 무엇입니까?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말이 신경 쓰여서 예수님 앞으로 과감하게 나아가는 것을 머뭇거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모든 장애물을 뚫고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로 나아가는 용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더 큰 은혜는, 그 용기를 내어 나아간 여인보다 먼저 그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신 분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가나안 여인이 올 수 있는 그 금지된 땅 두로와 시돈으로 가셨습니다. 삭개오가 나무 위에 올랐을 때, 예수님은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힘들고 아플 때, 예민하고 짜증 내고 절망 가운데 있을 때에도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언제나 나를 먼저 찾아오셔서 내 삶에 깊숙이 개입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복된 인생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4. 예수님의 시험적 대화 속 믿음의 발견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가나안 여인은 큰 소리로 외쳤지만, 23절을 보니 예수님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빨리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평소와는 너무 다른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두 번의 시험적인 말씀을 던지십니다.

24절 말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26절 말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이 당시 ‘개’라는 단어는 이방인을 향한 유대인의 멸시와 경멸이 담긴, 듣는 사람에게 깊은 모욕감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딸의 치유를 간구하는 어머니에게 이토록 냉정하고 모욕적인 말씀을 하셨을까요?

만약 이 대화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우리는 “교회에서 어떤 무시와 모욕적인 일을 겪더라도 견뎌야 복을 받는다”는 오해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참 의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거절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믿음이 어떤 뿌리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녀를 통해 구원의 보편성을 공적으로 선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대화를 통해 제자들과 주변의 유대인들에게 묻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가 이방인을 개로 여기지만, 구원의 순서가 이스라엘에게 먼저라는 사실을 이 이방 여인이 알고도 여전히 나를 붙잡을 만큼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5. 여인의 고백: 부스러기의 은혜
예수님의 시험적인 말씀에 여인은 화를 내거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27절에서 그녀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으로 응수합니다.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고백은 단순한 굴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의 논리이자 은혜를 붙잡는 영적 기지입니다.

“주님, 옳습니다. 제가 이방인이고 유대인의 구원 순서가 먼저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부스러기란 무엇입니까? 주인이 배불리 먹고 난 후에 떨어지는 은혜가 아닙니까? 주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남은 그 부스러기 은혜조차도 저에게는 충분합니다! 저는 그 부스러기라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제서야 그녀를 칭찬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두로와 시돈까지 오셨고, 이 대화를 통해 그녀의 위대한 믿음을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예수님은 왜 그녀의 믿음을 ‘크다’고 칭찬하셨을까요? 이방인임에도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으로 올바로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성경 지식을 가진 바리새인들도 인정하지 못했던 예수님의 신성을, 이 여인은 절박함 속에서 정확하게 붙잡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라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나의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고 자책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분명합니다. 구원이 먼저이고, 믿음은 그 구원을 받는 통로입니다. 가나안 여인에게 임한 구원도 영원전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였고, 그녀의 행동은 그 은혜를 붙잡아 구원과 치유를 적용받는 통로였습니다.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그분의 부스러기 은혜만으로도 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절대적인 확신인 것입니다.

6. 결론: 포기하지 않는 확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을 통해 깊은 도전을 받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우리의 연약함과 절망 속에도 예수님은 먼저 우리를 찾아오셔서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이 진리가 우리 삶의 가장 강력한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로 용기 있게 나아가야 합니다.
가나안 여인이 세상의 비난과 관습을 무릅쓰고 나아갔듯이,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말씀이 있는 예배, 기도, 묵상의 자리를 사수해야 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포기하지 않는 확신을 가집시다.

이것이 가나안 여인이 보여준 가장 큰 믿음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냉정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혹시 ‘내가 구원받았나?’라는 흔들림이 있다면, 구원의 확신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혹시 내 삶의 풀리지 않는 문제나 가족의 아픔 앞에서 낙심하고 있다면, 가나안 여인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능히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부스러기 은혜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이 고백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크도다 네 믿음이여!”라는 선언을 듣게 하는 진정한 믿음입니다. 이 은혜를 힘입어 주님을 만나는 복된 한 주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7. 한 주간의 적용
한 주 동안 이렇게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적용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의 자리 (예배, 기도, 묵상)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지키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세 사람을 위해 매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내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어떤 문제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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