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9.28 칼럼
사진: Unsplash의Brooke Lark

제목 : 땅의 양식도 잘 먹고, 하늘의 양식도 잘 먹고

1. 들어가는 말: 오병이어의 기적을 믿는가?

성경의 기적은 종종 합리적인 의심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홍해를 건넌 사건을 두고 ‘얕은 호수를 건넜다’고 설명하는 주일학교 교사의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사건을 자연적인 현상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건넌 얕은 물에서 애굽의 군대가 모두 몰살당했다는 사실은, 깊이와 상관없이 그곳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는 주장은 겉보기에 그럴듯하지만, 예수님께서 기적 후 “남은 조각을 거두라”고 말씀하셨을 때 **열두 바구니**나 남았다는 사실은 이 기적이 인간의 나눔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증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기적의 핵심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정확한 숫자 속에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숫자를 혼동하지 않고 정확히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이 기적이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인지 함께 깊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2. 영적인 허무함: 예수님이 필요하다

세례 요한의 죽음 소식은 예수님뿐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큰 충격과 공허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셨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 걸어서라도 그분을 따라왔습니다. 특히 유월절을 앞둔 시기였기에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몰려든 것은 단지 기적과 가르침에 대한 호기심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마가복음은 이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다”고 묘사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가 사라진 후, 깊은 영적인 허무함과 공허함을 느꼈던 그들의 내면을 정확히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로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려 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즐거움을 찾아 소비하고, 여행하며, 때로는 일 중독이나 성적인 타락, 심지어는 술과 마약 같은 극단적인 수단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잠언 23장 35절이 묘사하는 것처럼, 술에 취한 사람이 ‘술이 깨면 또 한 잔 해야지’라고 말하듯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인간의 근본적인 허무함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된 만족과 감사가 되십니다. 우리의 영혼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으며,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실 수 있습니다.

3. 서로 다른 관점: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능력

해가 저물고 배고픔이 찾아왔을 때, 제자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예수님, 사람들을 마을로 보내 저녁을 먹게 하소서. 이곳은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는 그들의 눈에 보이는 한계, 즉 ‘돈도, 음식도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빌립은 이 많은 사람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이 있어도 부족하다며 머리로 계산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삯임을 감안하면, 그 금액은 오늘날 수천만 원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었지만, 그 돈으로도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의 현실적인 계산을 뛰어넘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는 제자들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직면하게 하고, 인간의 논리와 한계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때 한 소년이 자신의 작은 도시락, 즉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놓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절망적인 보고 앞에서,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작은 도시락은 인간의 한계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4. 일어난 기적과 풍성함

이날 모인 사람의 수는 남자만 오천 명이었고,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학자들에 따라 1만 5천 명에서 2만 명까지 추정되기도 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기적을 행하셨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아니라, **모두가 충분히 먹고도 열두 바구니나 남았다는 풍성한 결과**입니다. 이 기적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구약의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났던 만나입니다. 출애굽기 16장 12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시며 만나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먹을 것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임을 알게 하려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엘리사가 보리떡 스무 개로 백 명을 먹인 사건**입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먹고도 남는 풍성함이 주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오병이어는 인간의 가장 큰 두 가지 문제인 ‘죽음’과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해결하셨다면, 오병이어 기적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먹고 사는 것은 내게 달려 있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모든 염려와 불안을 그분께 맡길 때, 우리는 먹이시고 입히시며 결국 우리를 웃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5. 주의 만찬: 일시적인 떡인가, 영원한 생명인가?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음 날 다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요 6:26). 이는 그들의 관심이 영원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에게 있지 않고, 단지 육신의 배고픔을 채우는 데 머물러 있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마태는 이 오병이어 기적과 최후의 만찬을 의도적으로 연결합니다. 마태복음 14장 19절과 26장 26절은 모두 동일하게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특히 14장에서는 ‘물고기’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빼고 기록하여, 두 사건의 본질적인 연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떡은 예수님의 **몸**,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가 되며, 이는 **새로운 언약**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성찬식은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이 위대한 희생을 기억하고,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으로 구원받았음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또한 이 성찬식은 요한계시록 19장에 나오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오병이어의 풍성함은 장차 우리가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잔치의 예표였습니다.

6. 결론 및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먹고 입어야 하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오병이어 기적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삶의 필요를 예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계획이 무너지고, 의지할 것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예수님은 “내가 너를 먹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결국 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땅의 것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 우리에게 천국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오병이어는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작은 기쁨과 풍성함이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의 것도 잘 누리고, 하늘의 것도 잘 누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한 주간, 다음 세 가지를 삶에서 실천하며 예수님을 더욱 깊이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염려 한 줄 쓰기: 아침에 일어나서 그날 가장 걱정되는 것 한 가지를 적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께 맡기며 기도합니다.
2. 영적 식사 시간 갖기: 매일 시간을 정해 성경을 읽고, 하늘의 양식을 섭취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3. 천국 감사 목록 작성하기: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 내가 맛본 천국과 같은 감동적인 순간들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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