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들어가는 말
여러분에게 있어서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저는 결혼식도 생각이 나고, 세 아이의 탯줄을 잘랐던 감격스러운 순간도 떠오릅니다. 또 ‘오병이어’라는 아주 간단한 문제를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신대원에 합격한 놀라운 순간도 기뻤습니다. 한동안 학교에서 “저희가 실수해서 강현철 님의 불합격이 합격으로 잘못 전달되었습니다”라는 전화가 올까 봐 가슴 졸이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여러분을 만나는 매 순간이 저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였을까요? 아니면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온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을 때일까요?
제가 볼 때, 다윗의 최고의 순간은 바로 오늘 본문의 이 순간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드디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스스로 왕의 자리를 탐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나이 겨우 10대였을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골리앗을 물리쳤고, 사울 왕의 사위까지 되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왕이 될 것 같았지만, 그의 삶은 곧바로 광야로 향했습니다. 그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약 10년의 긴 도망자 생활 끝에 30세에 유다의 왕이 되었고, 다시 7년 6개월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기름부음의 약속을 받은 후 짧게는 20년, 길게는 25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장로들 앞에서 다시 기름부음을 받을 때,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숱한 도망의 밤과 눈물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그 모든 시간을 견디게 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얼마나 깊이 감격했을까요?
그렇다면 다윗이 왕이 된 이 사건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본문을 통해 그 깊은 의미를 함께 발견하기 원합니다.
2. 사람으로서 왕, 다윗
3절을 읽어볼까요?
>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본문에 사용된 ‘왕’, 히브리어 ‘멜렉크’는 세상의 모든 왕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단어입니다. 다윗 역시 한 사람의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리고 전쟁을 치르며 영토를 넓히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행정 조직을 정비하고, 때로는 인간적인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전의 사울 왕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그의 통치가 시작되자, 당시 강력한 해상 국가였던 두로의 히람 왕이 먼저 사절단을 보냅니다. 그냥 온 것이 아니라, 다윗의 궁궐을 지을 백향목과 최고의 기술자들을 선물로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은 두로가 다윗의 이스라엘을 이전과 다른 ‘강한 나라’, ‘함께해야 할 나라’로 인정했다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왕 됨에는 더 깊은 차원의 의미가 숨어 있었습니다.
3. 하나님이 택하신 왕, 다윗
1절과 2절이 그 비밀을 알려줍니다.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1절에서는 ‘모든 지파’가 ‘다윗’에게 나아왔다고 말하는데, 3절에서는 ‘모든 장로’가 ‘왕’에게 나아와 기름을 붓습니다. 이 미묘한 표현의 차이는 이스라엘의 왕이 가진 두 가지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첫째는 세상의 왕과 같은 ‘멜렉크’의 모습입니다. 둘째는 2절에 나옵니다. 백성들은 다윗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여기서는 ‘왕’ 대신 ‘목자’와 ‘주권자’라는 특별한 단어가 사용됩니다. 목자는 양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는 희생적인 존재입니다. ‘주권자’로 번역된 ‘나기드’는 단순히 군림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섬기도록 맨 앞에서 이끄는 리더’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세상의 왕인 ‘멜렉크’로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야 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나기드’로서 그분의 백성을 섬기고, 이스라엘의 진짜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두 가지 모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빠, 엄마, 자녀, 직장인이라는 일상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세상에 발을 딛고 살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기준은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내 이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정체성을 가슴에 품고, 오늘 하루에 충실하되 영원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4. 예루살렘 정복
통일 왕국의 왕이 된 다윗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예루살렘 정복이었습니다. 여기에는 군사적, 정치적 이유를 넘어서는 깊은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은 천혜의 요새였고, 둘째, 남과 북으로 나뉜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중립적인 위치의 도시였습니다. 이는 왕으로서 탁월한 정치적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깊이 주목해야 할 세 번째, 신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등장하는데, 이 살렘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모리아 산 역시 훗날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질 자리였습니다.
또한,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전쟁 때 유일하게 정복되지 않고 남아 있던 땅이 바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다윗이 이곳을 정복했다는 것은, 여호수아 때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약속, 그 땅의 정복이 마침내 완성되었음을 상징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5. 하나님의 도우심
여부스 족속이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칠 수 있다”고 조롱할 만큼 난공불락이었던 예루살렘.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성을 정복합니다. 강대국 두로가 먼저 찾아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며, 다윗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힘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 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아, 하나님이 나를 세우셨구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이 나라를 높이고 계시는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그는 온몸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6. 다윗이 왕이 된 것의 첫 번째 의미
자, 그렇다면 다윗이 왕이 된 것이 21세기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2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하나님은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마침내 이루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마음이 무너지고 미래가 불안한 우리에게 평안과 위로를 약속하셨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우리 삶에 보호와 인도를 약속하셨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순종의 길 위에서, 이 땅과 하늘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시간을 넘어, 우리의 삶 속에서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7. 다윗이 왕이 된 것의 두 번째 의미
하지만 오늘 본문에는 더 깊고 놀라운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에게 찾아와 한 고백을 다시 들어보십시오.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뼈와 살)이니이다.”
이 표현, 어디서 들어보지 않으셨습니까? 창세기 2장, 아담이 하와를 처음 보고 터져 나왔던 인류 최초의 사랑 고백입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은 단순한 혈연관계를 넘어선, 완전한 연합을 의미하는 사랑의 언어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연합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성도)의 연합을 보여주는 모형이었듯이, 오늘 다윗과 이스라엘의 연합 또한 죄로 깨졌던 관계가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회복될 것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림인 것입니다.
다윗의 모습 뒤에, 우리는 우리를 “내 뼈요, 내 살이라” 불러주시며 우리와 하나 되기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8. 언제가 최고의 순간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로또에 당첨되면 기쁠까요? 물론 기쁘겠죠. 원하던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행복할까요? 당연합니다. 자녀가 잘되고, 깨졌던 관계가 회복되고, 건강을 되찾으면 그 순간은 정말 기쁘고 감사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에 그런 기쁨과 회복이 넘치기를 매일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아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속히 응답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런데 제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간식이나 장난감을 손에 쥐여 주면 아이는 간식과 장난감에 온통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것을 준 아빠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 자신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기도를 더디 응답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 시간을 통해, 우리가 선물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더욱 깊이 바라보기를 원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예배의 자리를 지키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소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승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최고의 순간은 언제일까요? 언제 우리는 가장 기쁘고, 가장 완전한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 순간은 이 땅에 없습니다. 우리의 진짜 ‘최고의 순간’은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얼굴과 얼굴로 마주하는 그날이기 때문입니다.
9. 적용
이번 한 주도 여러분 마음의 소원과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응답받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저에게 기도 제목을 나눠주시면, 저도 온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합시다. ‘나의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기도의 응답이라는 귀한 선물을 받을 때조차, 그 선물을 주신 분을 더욱 바라보며 ‘나의 진정한 최고의 순간은 주님을 만나는 그날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그런 깊이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