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진정한 자유: 구속과 섬김으로 나아가라
본문은 사무엘하 3장 1~16절 말씀을 통해 다윗의 삶에서 드러나는 여러 관계와 사건들을 조명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많이’라는 개념과 다윗의 아내들, 아브넬과 이스보셋, 그리고 미갈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2. 왕의 조건과 ‘많이’의 의미
신명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지켜야 할 세 가지 금지 사항을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고, 둘째는 은금을 많이 쌓지 말며, 셋째는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의 두 가지는 이해가 되지만,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구절의 ‘많이’라는 표현은 의문을 자아냅니다. 왜 ‘한 명’이라고 명시하지 않고 ‘많이’라고 했을까요? 이는 당시 사회상과 문화적 배경 속에서 왕들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왕국을 든든히 하기 위해 많은 아내와 후계자를 두었던 현실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흐름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의 본래적인 뜻은 ‘일부일처제’임이 분명합니다(마태복음 19:5, 디모데전서 3:2). ‘많이’라는 표현은 당시의 문화적 관용 속에서도 절제와 제한이 필요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다윗의 아내들과 아들들: 세상의 기준에 갇힌 자유
본문 2절에서 5절은 다윗의 아내 6명과 그들이 낳은 아들들을 소개합니다. 맏아들 암논부터 시작하여 압살롬, 아도니야 등 다윗의 아들들이 나열되는데, 이는 고대 가부장적 사회에서 왕국의 계승과 안정을 위한 후계자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특히 정치적 목적으로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와 결혼한 다윗의 사례는 당시 왕들이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세상의 기준을 따랐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이렇게 많은 아내를 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아브라함, 야곱, 다윗, 솔로몬 등 성경 속 믿음의 조상들이 여러 아내를 두었던 사례를 들어 일부다처제를 옹호하는 주장도 있지만,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인 ‘일부일처제’입니다. 다윗이 여러 아내를 취한 것은 당시 왕들의 관습을 따랐을 뿐, 하나님의 온전한 뜻은 아니었습니다. 이는 결국 암논의 범죄, 압살롬의 반역 등 다윗 가문에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는 세상의 기준을 따랐을 때 발생하는 죄와 고통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4. 아브넬과 이스보셋, 그리고 미갈: 권력과 정치적 계산 속의 관계
두 번째 사건은 아브넬이 사울의 첩 리스바와 관계를 맺고, 이에 분노한 이스보셋과의 갈등입니다. 아브넬의 이 행동은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는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버리고 다윗에게로 돌아설 명분을 제공합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허수아비 왕국이 기울어감을 직감하고 자신의 생존과 권력을 위해 다윗에게로 전향하려 합니다. 이는 인간의 기회주의적이고 계산적인 모습을 드러냅니다.
세 번째 사건은 다윗이 아브넬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자신의 첫 번째 아내인 미갈을 데려오라고 요구하는 장면입니다. 다윗이 미갈을 간절히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울의 딸 미갈을 다시 아내로 맞이하여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 사울 편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적인 목적이 강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의 삶에서도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정치적이고 계산적인 판단이 우선시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 혼란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선한 선택의 중요성
다윗의 삶은 혼란스럽고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나라는 두 개로 쪼개졌고, 다윗의 주변에는 인간적인 욕망과 정치적 암투가 난무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다윗의 집은 점점 강성해지고 사울의 집은 약해집니다. 심지어 아브넬과 같이 악하고 기회주의적인 인물조차도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 속에서 다윗 왕국을 견고하게 세우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가르칩니다. 첫째,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한 사람이 행하는 실수와 죄를 통해서도 역사하시며, 당신의 절대 주권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혼란스럽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모든 것을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선한 것을 선택하고 악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실수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지금 가장 선하고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6. 자유로운 절제: 참된 자유는 구속과 섬김에 있다
결론적으로 설교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역설합니다. 리우 올림픽 선수가 대회를 위해 스스로 음식 섭취를 절제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스스로를 구속하고 절제하며 타인을 섬기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 말씀처럼, 우리는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해야 합니다. 다윗은 주어진 자유와 권력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사용했지만,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면서도 가장 낮은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었지만, 스스로 고통과 구속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예수님이 주신 자유를 우리의 죄 된 욕심을 채우는 데 사용하지 않고, 종의 모습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자유를 가지고 내 죄 된 욕심과 욕망을 채우는 부분이 없는지 돌아보고, 혹시 그런 부분이 있다면 스스로 포기하고 절제하며 지내는 ‘자유로운 구속’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나를 위한 방종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타인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나 자신을 기꺼이 제한하는 ‘절제’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