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사건의 배경과 시간적 맥락
오늘 본문은 길보아 전투 이후의 사건을 다룹니다. 언뜻 보면, 다윗이 아말렉인을 추격해 잃은 것을 되찾고, 그 후 길보아 전투가 일어나고, 오늘 본문의 사건이 이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하 1장 1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윗의 아말렉인 추격과 길보아 전투가 거의 동시에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다윗이 사울의 죽음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이 죽었고, 이 죽음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서 다윗이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 있었지만,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존중하며 그를 해치지 않았음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다윗은 이를 다시 강조합니다. 인간적 관점에서는 사울의 죽음이 다윗과 연관되었을 거라 의심할 수 있지만, 본문은 다윗이 아말렉인과 싸우느라 바빴던 시점에 사울이 죽었음을 분명히 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2. 아말렉인 전령과 다윗의 반응
사울은 길보아 전투에서 죽었지만, 다윗은 처음에 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사울의 죽음 후 3일째 되는 날, 한 아말렉인이 다윗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길보아에서 시글락까지 약 190km를 힘겹게 걸어왔습니다. 성인 남성이 시간당 약 6km를 걷는다고 가정하면, 그는 전투 직후 하루 10시간 이상 걸어 다윗에게 도달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왔음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심이나 호기심에서인지, 다윗은 첫 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이 질문은 단순히 출신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너는 누구냐? 어떤 정체성을 가졌느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에 아말렉인은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쳐 왔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이 대답은 표면적으로 문제없어 보이지만, 여기서 ‘도망쳐’라는 단어는 전투가 끝나기 전에 몰래 빠져나왔음을 암시합니다. 다윗은 이 대답에서부터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투 중 도망친 자가 왜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일까?
다윗은 두 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의심 속에서도 다윗은 이 사람이 왜 왔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말렉인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합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했고,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상 31장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이미 알고 있지만, 다윗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 대답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전투가 끝나기 전에 도망친 자가 어떻게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알았을까? 게다가 사울은 세 아들을 데리고 전투에 나갔는데, 왜 요나단만 언급했을까?
놀란 다윗은 세 번째 질문을 합니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어쩌면 다윗은 이미 그의 거짓을 눈치챘을지 모릅니다. 이에 아말렉인은 “우연히 사울을 보았는데, 그가 나에게 죽여달라고 해서 내가 그를 죽였습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다윗은 이 말이 거짓임을 알았습니다. 사울이 아말렉인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무엘하 1장 14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리고 그를 처형하라 명령합니다. 결국, 아말렉인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3. 아말렉인의 성품 분석
아말렉인은 이스라엘의 오랜 적이었습니다. 출애굽 당시 그들은 약한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했고,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 아말렉을 완전히 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 명령에 불순종해 아말렉 왕을 살려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말렉인이 사울의 군대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요?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에는 결혼, 종 복무 등 다양한 경로로 이방인이 포함되곤 했습니다. 이 아말렉인도 그러한 방법으로 사울의 군대에 합류했을 것입니다.
그는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 사회에 적응한 그는 적응력이 탁월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할 것을 미리 알아차리고 중간에 도망쳤으니, 상황 판단력도 뛰어났습니다. 사울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보통 사람이라면 그의 귀중품을 훔쳤을 테지만, 그는 사울의 죽음을 이용해 다윗에게 가서 큰 보상을 얻으려 했습니다. 이는 그의 장기적인 안목을 보여줍니다.
그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이 소식을 다윗에게 전하면 유리할 거라 판단했습니다. 이는 그의 정보력을 드러냅니다. 또한, 다윗 앞에서 당당히 거짓말을 할 정도로 그는 대담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지능, 통찰력, 대담함, 전략성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 거짓말로 높은 지위나 재물을 얻으려 했지만, 결국 그의 생명을 잃었습니다.
4. 영적 적용: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정체성
이 이야기는 정직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의 중요성을 가르치지만,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하늘에서 오셨음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분임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너희는 누구의 자녀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는 그들의 정체성과 근원을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아말렉인에게 “너는 어디서 왔느냐?”라고 물은 것도 그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너는 어디서 왔느냐? 너는 누구냐?”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실패자입니다, 인생이 망했습니다”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비록 지금 상황이 어렵고 절망적일지라도,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진리를 기억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아말렉인에게 “사울의 죽음이 어떻게 되었느냐?”라고 물으며 그의 의도를 파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말렉인은 사울의 죽음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죽음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의 죽음은 태초부터 예정된 일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죽음과 부활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깊이 알고, 복음대로 살아야 합니다.
5. 영적 성숙을 향한 부르심
오늘 설교에서 다윗의 세 번째 질문이 “네가 어떻게 아느냐?”라고 말씀드렸지만, 원어로 보면 진정한 세 번째 질문은 사무엘하 1장 14절에 나옵니다: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아말렉인은 다윗이 사울을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로 존중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사울을 죽였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에게 세 번째 질문을 하신다면, 아마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왜 오늘도 죄를 지었느냐?”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연약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습니다. 둘째, 우리의 악함을 책망하시며 회개와 성숙을 촉구하시는 징계의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에서 멀어지고, 믿음을 굳건히 하여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6. 마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아말렉인은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지능, 통찰력, 대담함을 갖추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거짓말을 하다 결국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지혜롭고, 넓은 시야를 가지며, 대담하고, 빠른 판단력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러한 자질을 계발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을 아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깨달았다면, 이제 매 순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영적 성숙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