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4 칼럼
사진: Unsplash의Maël BALLAND

제목 :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기

사무엘상 31장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비극적인 최후를 기록합니다. 길보아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참패하고, 사울의 세 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가 먼저 전사합니다. 중상을 입은 사울은 적의 손에 죽는 치욕을 피하고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의 병기 든 자도 그를 따릅니다. 이는 단순한 전쟁 패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자기 뜻대로 행했던 사울의 삶과 그가 대표했던 인간 중심적 왕정의 필연적인 종말을 보여줍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우연히 사울과 아들들의 시체를 발견하고, 그의 시신을 벧산 성벽에 못 박아 조롱거리로 삼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닌 인간 왕에게 의존했던 이스라엘의 선택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비극적인 소식을 들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밤새 달려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정중히 장사 지냅니다. 그들은 과거 암몬 족속의 위협에서 사울이 자신들을 구원해 주었던 은혜(삼상 11장)를 잊지 않았습니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은혜를 기억하고 목숨을 걸고 신의를 지킨 것입니다. 이들의 행동은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언약적 의리와 감사가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한 줄기 빛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선행이 사울 개인이나 실패한 왕정 제도를 미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의리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사무엘상은 사울의 악함과 다윗의 선함을 대조하며 진행됩니다. 만약 이야기가 사울의 죽음으로만 끝났다면, 우리는 단순히 ‘악한 왕 사울을 본받지 말고 선한 왕 다윗을 본받자’는 교훈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통해 사울의 과거 선행이 상기되면서, 우리는 더 깊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문제는 단순히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왕정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었을까요?

사울은 실패했지만 다윗은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이 왕이 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하지만 다윗 이후 솔로몬 시대에 나라는 분열되었고, 북이스라엘 왕들은 모두 악했으며, 남유다 왕 20명 중 선하다는 평가는 단 8명(약 21%)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두 왕국 모두 멸망했습니다. 이는 분명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 왕정 제도’ 자체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제도라면 완전해야 할 텐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우리는 이 제도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백성들이 이방 민족처럼 눈에 보이는 왕을 요구했을 때, 하나님은 마지못해 허락하시면서도 왕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을 신명기 17장에서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왕은 율법책을 평생 곁에 두고 읽으며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통치해야 했습니다. 교만하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아야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 왕의 역할은 자신의 왕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심을 백성에게 드러내는 ‘표지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 왕정 제도를 통해, 역설적으로 백성들이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왕정 제도는 창세기의 선악과 사건과 유사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보며 ‘이것을 금지하신 분이 누구신가?’를 생각하고, 모든 것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을 바라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대신 선악과 자체에 집중했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함으로 불순종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인간 왕을 통해 참된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했지만, 왕이라는 존재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왕에게서 안정과 구원을 찾으려 했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를 거부했습니다. 사울은 이 역할에 철저히 실패했고, 다윗조차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결국 인간 왕은 하나님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인간 왕정의 실패는 우리를 완전하고 온전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신명기 17장의 왕의 조건을 완벽하게 성취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루셨고, 자신의 능력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셨습니다(마 26:53-54).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만물의 통치자요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엡 1:20-22).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왕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이스라엘이 인간 왕을 바라보다 실패했듯이, 우리도 세상의 헛된 것(권력, 부, 명예, 사람)을 왕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 자신과 교회가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고 하늘에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삶을 통해 주변 사람들(가족, 친구, 동료)이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실패한 인간 왕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경고하며, 동시에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참된 소망과 구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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