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보물은 귀하고 얻기 어려운 물건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보물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 보물은 우리가 땅에 쌓을 수도 있고 하늘에 쌓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보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이 보물을 땅이 아닌 하늘에 쌓을 수 있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그 보물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보물을 마음에 두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땅에 보물을 쌓고 땅에 마음을 두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이 보물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24절을 보면, 이 보물이 재물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재물 자체가 보물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재물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재물을 사용할 때, 그것이 바로 하늘에 쌓는 보물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재물, 즉 재정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먹고, 입고, 자는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때로는 쉬고 놀러 가기도 해야 합니다. 커피 한 잔의 여유나 일상적인 생활도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재정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려고 할 때, “나는 무엇을 먹고 마시지?“라는 걱정이 들 수 있습니다. 이 염려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은 우리가 하늘에 보물을 쌓을 때 염려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염려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아무리 걱정해도 우리의 키를 더 크게 할 수 없고, 삶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성도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합니다. 바로 33절 말씀대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또한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마음은 우리의 의지, 지식, 감정이 담긴 곳이며, 우리의 본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그래서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은, 보물이 곧 너 자신이라는 의미입니다.
22절에서는 갑자기 눈이 등장합니다. 이는 우리가 어디에 보물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그곳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으면, 우리의 시선은 하늘을 향하고, 하늘의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면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반대로, 우리가 땅의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우리의 시선이 그것을 향하고, 그로 인해 우리의 추악함과 더러움이 드러나게 됩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첫째는 “보물을 어디에 쌓을 것이냐”는 것입니다. 둘째는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는 단순한 걱정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나뉘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봐야 하는데, 세상을 동시에 바라보는 것이 바로 염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은 우리의 온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보물입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남자가 여자를 향해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의 돈에만 관심이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누가 그것을 진정한 사랑으로 받아들일까요?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이시며,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돈이나 시간에만 관심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전체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통해 그분을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보물을 어디에 쌓겠습니까? 하늘에 보물을 쌓아가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