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은 짠맛이 있습니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빛은 어둠을 밝혀 줍니다. 소금은 당연히 짠맛을 내야 하며 빛은 당연히 어둠을 밝혀줘야 합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을 수 없고, 빛이 어둠과 똑같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제자는 소금이고, 빛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맛을 내고 우리가 빛을 비춰야 하는 곳은 바로 세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는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소금이고 빛입니다. 세상에서 소금 역할을 잘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빛의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제자들은 이미 소금이고 빛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소금 역할을 잘해야 소금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빛을 잘 비춰주며 살아야 빛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가 아직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고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해도 그 아이는 내 아이입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아빠, 엄마를 제대로 부르지 못할 뿐입니다. 아빠, 엄마는 매일 아이에게 “내가 아빠야, 내가 엄마야,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이는 ‘이 사람이 내 아빠구나, 엄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이는 아빠, 엄마를 알고 나면 끝입니까? 아닙니다. 아빠, 엄마는 아이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정체성이라고 합니다. 또는 존재라고도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세상의 부모는 부족하기에 아이를 가르칠 때 실수도 있고 잘못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가르침에는 실수가 없으십니다. 성도인 우리에게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것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래도 우리는 성도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다시 일어서서 세상을 나가야 합니다. 세상의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소금이고 이미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여주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을 돕는 것이 착한 행실입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것이 착한 행실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전에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무엇이 착한 것인가?, 착한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라고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선하심 그 자체다’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이 선과 악의 기준입니다. 이 기준을 우리가 알 수 있도록 주신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착한 것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서 선한 영향을 미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착한 행실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올바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면 그것이 착한 행실이 됩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믿음의 선배들이 말씀대로 살았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놀라운 영향력을 미쳤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소금으로 살고 빛으로 사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착한 행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입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착한 행실입니다. 착한 행실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이미 소금이고 빛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이제 그대로 살아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