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9일 칼럼
사진: Unsplash의Matthew Fournier

제가 어릴 때 살았던 동네에는 작은 강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강보다는 작았지만 웬만한 개천보다는 더 컸었습니다. 깊은 곳은 깊이가 3미터 정도 되었고 폭이 넓은 부분은 7~8미터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얕은 곳도 있었고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를 지나면 깊이가 허리 밑으로 내려가는 작은 강이었습니다. 여름에는 당연히 물놀이를 했었고 겨울에는 꽁꽁 언 얼음 위에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초겨울 이제 막 얼음이 얼기 시작합니다. 그 때는 얼음이 약해서 그 위에 올라가면 위험합니다. 그러다가 얼음이 꽁꽁 얼기직전 마음 급한 아이들이 얼음 위에 올라가서 놀았습니다. 그렇게 놀다보면 작은 강의 가운데 부분은 얼음이 조금 녹아서 마치 고무 대야처럼 움직입니다. 자신감이 있는 아이들은 그 가운데 부분을 뛰어서 지나가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딱딱한 얼음 위에서 놉니다. 물론 작은 강 가운데를 건너다가 발이 빠지거나 옷이 젖은 아이들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두 명이 등장합니다. 한 명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입니다. 두 번째는 그의 아들 요나단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대치 중입니다. 작은 일만 생겨도 바로 전쟁이 일어날만한 극도로 예민한 상황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사울에게 “블레셋을 공격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블레셋을 공격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히려 그의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을 공격합니다. 요나단 때문에 결국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볼 때 사울의 행동이 요나단의 행동에 비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에 비해서 요나단의 행동은 무모해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사울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반대로 요나단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의 행동이 믿음의 행동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요나단의 행동을 ‘건너가다’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요구하셨던 것이 바로 건너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으로 불렀던 아브라함은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하나님이 말씀하신 땅으로 왔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광야를 건너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참 놀랍게도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먼 길을 둘러서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너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건너가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돈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세상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역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를 대할 때 아직 세상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서로 하나님의 영역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에서 아직도 세상의 영역에 살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영역에서 과감하게 하나님 말씀의 영역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내 삶에 어떤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건너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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