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믿는데 두렵다
1. 들어가는 말: 믿음과 현실 사이의 괴리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일상의 현장으로 돌아가면, 마치 슈퍼맨 삼촌을 둔 아이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것처럼, 세상은 부활을 허구로 치부합니다. 더 큰 문제는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는 우리조차 정작 삶의 문제 앞에서는 여전히 두려워하고 흔들린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마가복음 16장은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두려워하며 도망쳤던’ 여인들의 모습을 통해, 두려움 속에 있는 우리를 향한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조명합니다.
2. 하나님의 선행(先行): 우리가 걱정하기 전에 이미
안식일이 지나고 세 여인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녀들의 최대 고민은 “누가 무덤 앞의 큰 돌을 굴려줄까?” 하는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무덤에 도착했을 때,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이미 우리보다 먼저 움직이고 계십니다. 우리가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돌을 치우시고 먼저 와 계시는 분입니다.
3. 사랑의 완성: 감정을 넘어선 ‘지식’
무덤을 찾은 여인들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부활하신 주님’이 아닌 ‘무덤 안의 시신’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생전에 하신 부활의 약속을 ‘지식’으로 붙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뜨거운 감정도 필요하지만, 대상에 대한 바른 지식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지식이 없는 사랑은 방향을 잃고 슬픔과 두려움에 머물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구하며 주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사랑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4. 갈릴리로 가라: 실패를 덮는 부르심의 자리
천사는 제자들과 특별히 ‘베드로’의 이름을 언급하며, 예수님이 먼저 갈릴리로 가셨으니 거기서 만나라고 전합니다. 왜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일까요? 예루살렘은 제자들이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쳤던 ‘실패와 수치의 장소’입니다. 반면 갈릴리는 주님을 처음 만났던 ‘소명과 추억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실패를 들추지 않으시고, 처음 사랑을 나누었던 그 자리로 그들을 초청하셨습니다. 이는 “나는 너희를 실패로 기억하지 않는다. 처음 그 자리로 다시 오라”는 주님의 따뜻한 배려이자 회복의 선언입니다.
5. 두려움의 실체와 복음의 소망
마가복음의 마지막(16:8)은 의외의 장면으로 끝납니다. 부활의 소식을 들은 여인들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몹시 놀라 떨며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이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편에 있는 부정적인 상태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을 확신한다면서도 질병, 경제적 위기, 관계의 균열 앞에서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한 영웅을 찾아가신 것이 아니라, 두려워 떨며 문을 걸어 잠근 여인들과 제자들을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먼저 찾아오신 주님은, 지금도 두려움 가운데 침묵하는 우리를 먼저 찾아오십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건일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이 지금 내 고난의 현장에 먼저 와 계신다는 강력한 선포입니다.
6. 결론: 그분이 거기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 번의 반전이 있습니다.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고, 예수님은 이미 갈릴리에 가 계셨으며, 두려워하는 이들을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모든 방향은 ‘예수님이 먼저’입니다. 그러니 두려움 없는 척, 괜찮은 척하지 마십시오. 연약한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주님은 이미 여러분의 ‘갈릴리’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복음의 능력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일어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7. 적용
1. [그를 알아가기: Knowing Him]
“나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알려 하고 있는가?”
2. [그에게 돌아가기: Returning to Him]
“나의 갈릴리는 어디인가? 나는 지금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는가, 갈릴리로 향하고 있는가?”
3. [그에게 나아가기: Coming to Him]
“나는 지금 두려움 가운데 혼자 얼어붙어 있는가, 그 두려움을 들고 예수님께 나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