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1 풍성한 칼럼
사진: Unsplash의The Ian

제목 : 보내는 자와 가지 않는 자

 1. 서론: 성군 다윗의 뼈아픈 흑역사와 우리의 자화상

성경의 인물들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동시에 우리와 같은 연약함을 지닌 죄인이기도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두려움 앞에 아내를 누이라 속였고, 오늘 본문의 주인공 다윗 역시 인생 최악의 ‘흑역사’를 기록합니다. 성군이라 불리던 다윗은 밧세바 간음 사건을 통해 십계명의 하반절(6~10계명)을 모조리 어기는 처참한 영적 타락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인간의 깊은 죄성과 그 죄를 덮으려는 인간의 수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를 조명하십니다.

 2. 안락함의 옥상에서 시작된 죄의 시선

다윗 시대의 국력은 막강해졌고, 이제 왕이 직접 출전하지 않아도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요압과 군대들이 암몬과 전쟁을 치르는 동안, 다윗은 홀로 예루살렘 왕궁에 머뭅니다. 어느 날 저녁, 낮잠에서 깨어 옥상을 거닐던 다윗은 목욕하는 한 여인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의 ‘시선’입니다. 물리적 거리를 고려할 때, 다윗이 여인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식별했다는 것은 이미 그의 마음에 죄의 욕망이 가득했음을 시사합니다. 마치 하와가 선악과를 보았을 때처럼, 다윗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탐욕의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는 여인이 충직한 부하 우리아의 아내임을 알고서도 권력을 이용해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여 범죄하였고, 결국 임신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결과에 직면하게 됩니다.

 3. 죄를 은폐하려는 ‘보내는 권력’

임신 소식을 들은 다윗은 회개 대신 ‘은폐’를 선택합니다. 그는 전장의 우리아를 소환합니다. 다윗은 왕의 권위를 이용해 우리아에게 “집으로 가서 쉬라”며 끊임없이 ‘보냅니다.’ 이는 우리아가 아내와 동침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덮으려는 치밀한 계산이었습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사람을 보내 정보를 캐고, 전령을 보내 여인을 데려오고, 이제는 우리아를 집으로 보내려 합니다. 여기서 ‘보내다’라는 동사는 다윗이 자신의 죄를 가리기 위해 휘두르는 권력의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충직한 군인 우리아는 “언약궤와 동료들이 들판에 있는데 나 홀로 편히 집에서 잘 수 없다”며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궁전 문에서 잠을 잡니다.

 4. 하나님의 세밀한 경고와 닫힌 마음

우리아의 거절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아의 입술을 통해 다윗에게 세 가지 영적 경고를 보내셨습니다.

* 첫째, ‘언약궤’의 언급입니다. 과거 하나님의 방식대로 궤를 모시지 않아 실패했던 다윗에게 “지금 네 방식이 옳으냐”고 묻는 것입니다.

* 둘째, ‘장소’의 대조입니다. 군사들은 거친 들판(사명의 자리)에 있는데 다윗은 안락한 왕궁(죄의 자리)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 셋째, ‘동침(자다)’이라는 단어의 사용입니다. 우리아가 말한 ‘자다’는 단어는 다윗이 밧세바와 범죄할 때 쓴 단어와 같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입에서 나오는 이 단어들을 들으며 가슴이 뜨끔해야 했고 즉시 엎드려야 했지만, 욕망에 눈먼 그는 끝내 침묵합니다.

 5. ‘보내는 자’ 다윗과 ‘보냄 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

결국 다윗은 우리아의 손에 ‘그를 죽이라’는 편지를 들려 사지로 보냅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보내는 권력’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현장 너머로 우리는 또 다른 ‘보내심’을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다윗처럼 자기 죄를 덮으려 사람을 사지로 보내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다윗은 권력을 휘두르며 타인을 희생시켰으나, 예수님은 온 우주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보냄 받은 자’로서 십자가라는 죽음의 자리로 자신을 내어던지셨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에게 ‘죽음의 편지’를 들려 보냈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의 편지’를 보내신 것입니다.

 6. 결론 및 적용: 다시 사명의 자리로

다윗의 비극은 마땅히 가야 할 ‘사명의 자리(들판)’를 떠나 ‘권력의 자리(옥상)’에 앉았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내 허물을 덮기 위해 타인을 비난하고, 내 편안함을 위해 사명을 회피하는 ‘다윗들’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다시금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 말씀하시며 신뢰해 주십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는 세 가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1. 장소의 점검: 나는 지금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할 사명의 자리에 있는가?

2. 주체의 전환: 남을 조종하고 보내려 하기보다, 나 자신을 낮은 곳과 사랑의 현장으로 보내고 있는가?

3. 내용의 확인: 나는 세상에 ‘죽음의 기운’을 전하는가, 아니면 ‘생명의 복음’이라는 편지를 전하고 있는가?

나를 위해 기꺼이 보냄 받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이제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뜻이 필요한 곳으로 기꺼이 보내는 사명자의 삶을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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