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땅따먹기의 추억과 다윗의 승리
어린 시절, 해 질 녘까지 마당에서 친구들과 땀 흘리며 하던 ‘땅따먹기’ 놀이를 기억하십니까? 손가락으로 돌을 튀겨 내 땅을 한 뼘이라도 더 넓히려고 아등바등하던 그 시간, 땅을 빼앗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고 빼앗기면 억울함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치열했던 놀이는 어머니의 “밥 먹어라!” 하는 부르심 한마디에 허무하게 끝이 났습니다. 우리는 애써 얻은 땅을 발로 쓱쓱 문질러 지우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놀이가 끝나면 내 땅은 아무런 의미 없는 흙바닥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이 땅따먹기를 기가 막히게 잘했던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사무엘하 8장은 다윗이 주변 나라들을 차례로 정복하며 파죽지세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승리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서쪽의 블레셋, 동쪽의 모압, 북쪽의 소바와 아람, 그리고 남쪽의 에돔까지. 다윗은 이스라엘 사방의 대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수천 년 전 다윗의 영토 확장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단순히 옛날이야기나 위인전의 한 페이지로만 남는다면, 그것은 예배 후에 문을 나서면 사라질 땅따먹기 놀이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다윗의 승리 속에 숨겨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영적 비밀을 오늘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2. 생략된 땀방울, 드러난 하나님의 주권
본문은 다윗의 정복 전쟁을 매우 압축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줄의 문장으로 한 나라를 정복하고 다음 나라로 넘어갑니다. 마치 산책하듯 쉽게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고대 전쟁은 건기에만 가능했기에 해마다 출정을 반복해야 했고, 에돔 정복 후 뒷수습에만 6개월이 걸렸다는 다른 기록을 볼 때, 이 8장의 기록은 수년 혹은 수십 년에 걸친 피와 땀, 눈물의 결정체입니다.
성경은 왜 그 치열했던 과정, 다윗의 탁월한 전략이나 용맹함을 생략했을까요? 답은 6절과 14절에 반복되는 문장에 있습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성경의 의도는 명확합니다. 이 전쟁은 다윗의 영웅담이 아닙니다. 승리의 주체는 다윗의 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기게 하심’에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난 7장에서 다윗과 맺은 언약,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리라”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계십니다. 다윗의 승리는 그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 성취라는 증거입니다.
3. 다윗의 승리,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다윗이 칼과 창으로 이룩한 눈에 보이는 영토 확장은 장차 오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영적 승리의 예표(그림자)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주변의 대적들을 굴복시켰듯,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 사탄의 권세를 발아래 두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고전 15:25)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진정한 승리자이십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거룩한 정복 전쟁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며 이 사명을 교회인 우리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다윗에게 블레셋 정복이 사명이었다면, 오늘 우리에게는 복음 전파와 선교가 사명입니다. 우리가 삶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 사탄에게 빼앗겼던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며 하나님 나라는 계속해서 확장됩니다.
4. 삶의 현장, 가장 치열한 선교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싸워야 합니까? 해외 선교지만이 선교지가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출근하는 직장, 공부하는 학교, 설거지와 육아로 분주한 가정이 바로 하나님이 파송하신 최전방 선교지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성경 지식이나 예배의 열정보다,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를 봅니다. 직장에서 남을 험담하지 않고 정직하게 일하는 모습, 손해를 감수하며 양보하는 태도, 가정에서 배우자를 존중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그 실천이 곧 가장 강력한 복음 전도입니다. 입술의 고백을 넘어 삶의 순종으로 내게 맡겨진 땅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감당해야 할 영토 확장입니다.
5. 성공의 그림자: 남겨둔 말의 힘줄을 끊으라
다윗의 승리 기록에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섬뜩한 그림자도 숨어 있습니다. 다윗은 소바를 정복한 후 병거 일백 대의 말을 남겼습니다(4절). “왕은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신 17:16)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승리에 도취하여, 혹은 미래의 불안함 때문에 세상의 힘을 일부 남겨둔 것입니다. 이 작은 ‘틈’은 훗날 아들 압살롬과 아도니야의 반역 도구로, 솔로몬 시대의 타락으로 이어지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지경이 넓어지고 성공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사업이 번창하고 지위가 높아질 때, 우리는 하나님보다 내 힘, 내 돈, 내 인맥(병거의 말)을 의지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내가 이만큼 이뤘다”는 공로 의식이 고개를 듭니다. 그때 우리는 단호하게 내 안의 ‘말의 힘줄’을 끊어야 합니다. 성공의 자리에서 내 이름과 공로를 지우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남기는 영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6. 나를 지우고 예수를 새기는 삶
어린 아들이 교회 소파에 낙서하고 자랑스럽게 자기 이름을 적어놓았던 일화처럼,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 수고와 헌신의 자리에 내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떠난 자리에 남아야 할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다윗은 자기 이름을 떨쳤지만(13절),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확장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실력을 갖추고 영향력을 넓히십시오. 그러나 그 모든 확장의 목적은 내 이름 석 자를 남기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한 주간, 여러분이 서 있는 삶의 현장을 선교지로 선포하십시오. 작은 순종으로 복음의 지경을 넓히고, 내 이름을 지우며 예수의 이름만 남기는 진정한 승리자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