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4 칼럼
사진: Unsplash의Markus Spiske

 [설교 칼럼] 승리의 습관: ‘샤알’로 묻고, ‘바알브라심’으로 이기라

 1. 신앙은 곧 ‘습관’의 싸움입니다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왔을 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가족들과 식탁에 앉아 평소처럼 편안하게 밥을 먹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족들은 저를 보며 참 “이상하다, 우습다”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제 딴에는 편안하게 먹는다고 했지만, 몸에 잔뜩 밴 군기가 말투와 몸짓 하나하나에서 묻어났던 모양입니다. 제대 후에도 한동안은 그랬습니다. 처음 몇 주는 알람이 없어도 새벽 6시면 번쩍 눈이 떠졌습니다. 군인 정신이 몸의 습관이 된 덕분이었죠. 하지만 5~6개월쯤 지나자 일어나는 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결국 입대 전의 게으른 모습으로 완전히 되돌아갔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참 비슷합니다. 뜨거운 은혜를 체험하고 좋은 믿음의 습관을 정성껏 만들었지만, 삶의 문제와 고통이라는 파도에 부딪히다 보면 그 귀한 습관들이 어느덧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 역시 출발은 겸손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과 멀어지는 ‘불순종의 습관’에 길들여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윗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숙적 블레셋이 다시 공격해옵니다.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지려 할 때, 과거의 실패와 두려움을 가지고 반드시 다시 찾아옵니다. 과연 다윗은 사울과 무엇이 달랐을까요? 2026년이라는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 우리가 인생의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승리자가 되기 위해 붙잡아야 할 영적 비결은 무엇일까요?

 2. 다윗의 평안: 언약의 신실함을 바라보는 태도

베들레헴의 작은 목동이었던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린 영웅이 되었지만, 사울의 시기로 인해 10년이 넘는 세월을 도망자로 지내야 했습니다. 사울이 죽은 뒤 마침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예루살렘까지 정복하며 진정한 평안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본문 13절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11명의 자녀를 얻었다고 기록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자녀의 번성은 하나님의 복을 상징하며, 나라가 안정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흔히 다윗이 정치를 잘해서 이런 평화가 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에 따라 신실하게 이행하신 복의 결과입니다. 개혁주의 관점에서 평안은 인간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026년 한 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실 때 우리는 자만이라는 패배의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겸손의 습관을 먼저 갖추어야 합니다.

 3. 블레셋의 등장과 ‘요새’로의 하강

다윗의 평화가 무르익을 때, 블레셋은 전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거인(르바임)의 골짜기’를 가득 메운 블레셋은 일종의 심리전으로 이스라엘을 압박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위기 앞에서 다윗은 ‘요새’로 내려갔습니다. 이 요새는 그가 도망자 시절 하나님만을 독대했던 아둘람 굴과 같은 장소였을 확률이 높습니다. 왕궁이라는 화려한 성에서 기도의 골방인 낮은 곳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거룩한 습관을 발견합니다. 그는 왕이 되었음에도 도망자 시절 가졌던 절박한 기도의 습관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여쭈어보는 ‘샤알(Shaal)’의 습관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올라가리이까?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이 ‘샤알’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행위가 아니라, 내 인생의 배의 키를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주권 양도의 고백입니다. 2026년의 풍랑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의 방법을 찾아 허둥지둥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샤알’하는 것입니다.

 4. ‘바알브라심’의 승리와 ‘아짜브’의 허무함

이 질문에 하나님은 ‘바알브라심(Baal Perazim)’의 승리로 응답하셨습니다. ‘바알’은 주인, ‘브라심’은 돌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물을 흩음 같이 대적을 흩으셨습니다. 마치 거대한 댐이 무너지며 쏟아지는 물줄기가 블레셋 군대를 한순간에 쓸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가로막힌 담을 시원하게 뚫어버리시는 ‘돌파의 주님’이십니다.

이때 중요한 대조가 나타납니다. 패배한 블레셋은 자신들의 우상을 버리고 도망칩니다. 성경은 이 우상을 ‘아짜브(Atsab)’라고 부릅니다. ‘아짜브’는 ‘새긴 우상’인 동시에 ‘슬픔과 고통’을 뜻합니다. 하나님 대신 우리가 의지하는 세상의 것들은 결국 우리에게 슬픔과 고통(아짜브)만을 남깁니다. 승리를 줄 줄 알았던 우상이 수치가 되어 버려진 것입니다. 세상을 의지하면 슬픔뿐이지만, 주님께 ‘샤알’하면 바알브라심의 돌파를 경험하게 됩니다.

 5. 다시 샤알: 눈물 골짜기에서 들리는 행진 소리

블레셋은 한 번의 패배로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장소에 다시 쳐들어왔습니다. 이때 다윗은 “지난번에 이겨봤으니 안다”라고 자만하지 않고 ‘다시 샤알’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뽕나무 수풀 뒤편’에 매복하라는 새로운 전략을 주십니다. 여기서 뽕나무(바카)는 히브리어로 ‘눈물’과 발음이 같습니다. 인생의 가장 낮은 눈물 골짜기에서 숨을 죽이고 기다릴 때, 나무 꼭대기에서 하나님의 군대가 앞서 행진하는 ‘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가 눈물 흘리며 ‘샤알’할 때, 하나님은 하늘 군대를 보내 우리보다 앞서 싸우십니다.

물론 ‘샤알’은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설득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때로는 즉각적인 승리가 아니라 인내를 요구하시거나, 예상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도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샤알’하는 자는 그 지연과 거절조차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임을 믿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6. 완벽한 모델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 다윗의 모습은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새벽마다 하나님께 물으셨고(막 1:35), 겟세마네라는 눈물의 자리에서 자기 뜻을 꺾는 완벽한 ‘샤알’을 보이셨습니다(눅 22:42). 무엇보다 주님은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며 가져온 모든 슬픔(아짜브)을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바알브라심)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경건의 습관은 단순히 나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완벽한 샤알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7. 2026년을 위한 세 가지 경건 습관

이제 우리는 이 승리의 원리를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1. 질문의 습관: 일을 시작하기 전, 사람을 만나기 전 3초만 먼저 “주님, 제가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으십시오. 내 유능함이 아니라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 진짜 경건입니다.

2. 멈춤의 습관: 세상의 조급함에 등 떠밀리지 말고 주님의 ‘걸음 소리’가 들릴 때까지 매일 10분이라도 정적 속에 머무르십시오. 만약 하나님이 침묵하신다면 그 속에 머무는 것 또한 승리입니다.

3. 복원력의 습관: 무너졌을 때 슬픔(아짜브)에 함몰되지 말고, 즉시 하나님이 계신 ‘요새’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십시오. 넘어진 자리에서 주님을 부르며 일어나는 이 복원력이 우리를 끝까지 완주하게 만듭니다.

비록 응답이 우리가 생각한 때보다 늦어질지라도, 끝까지 주님의 인도를 묻는 자는 결코 패배하지 않습니다. 2026년 한 해, ‘샤알’의 습관으로 ‘바알브라심’의 역사를 경험하는 모든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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