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4 칼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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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는 말: 논쟁과 천국에서의 크기

최근 학교 폭력이나 갑질 문제로 연예계를 은퇴하는 배우들의 사례처럼, 우리 일상에는 논쟁과 다툼이 흔합니다. 부부 싸움, 자녀 간의 다툼, 심지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8장 1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라고 묻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통해 보면, 이는 제자들이 오면서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지를 두고 논쟁한 결과, 마음이 찔려 던진 질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논쟁을 단순히 꾸짖지 않으시고,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누가 천국에서 큰 사람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도가 싸우면 천국에 못 간다”는 단순한 말씀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와 가치관을 가르치려 하십니다.

 2. 크냐? 세상의 기준과 천국의 반전 

제자들의 논쟁이 심각한 이유는 그들의 마음속 기준이 세상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고난과 죽음을 당하고 부활할 것임을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로마를 무너뜨릴 힘 있는 영웅, 강력한 왕국을 건설할 메시아로 기대하며, 누가 국방부 장관, 총리가 될지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는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신 예수님의 사명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태도였습니다.

세상에서는 능력 있고, 많은 수익을 내고, 권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이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조직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은 쉽게 소외됩니다.

이러한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 공동체에 스며들 때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재정적인 여유가 많거나 재능이 많은 사람이 인정받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으나, 만약 교회가 재정이나 재능이 부족하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세상처럼 무시하고 필요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초대교회 때 부유한 성도들이 가난한 성도들을 무시하고 먼저 식사해 버린 것을 사도 바울이 강력하게 책망했던 것처럼, 교회 공동체가 세상과 똑같아지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3. 구원과 하나님의 기준: 외모를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

만약 예수님께서 세상적인 기준(능력, 돈, 외모)을 가지고 구원을 평가하신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무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신다고 선언합니다.

* 신명기 10: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 로마서 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이는 단순히 “내면이 겉모습보다 중요하다”는 도덕적 교훈을 넘어섭니다. 사람이 가진 기준(힘, 돈, 능력)은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기준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유능한 자가 인정받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하고, 아픈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자 되심을 믿으며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는지 여부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어떠함과 관계없이 구원의 은혜를 누립니다. 외모나 능력을 보지 않으시고 은혜로 구원하시는 이 하나님의 기준에는 거룩하신 사랑과 정의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내가 잘났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자랑해야 합니다.

 4. 어린아이의 특징: 전적인 의존과 겸손

예수님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8:3)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예수님 당시의 어린아이는 귀한 존재가 아니었으며 사람 수를 셀 때 포함되지도 않았습니다. 어린아이는 힘이 없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아무것도 스스로 이룰 수 없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뿐입니다.

제자들이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세상적 기준으로 논쟁했던 것처럼,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언급하신 핵심은 바로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전적인 무능력(전적 타락)을 인정하고,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완전히 의존하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물론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일상에서 힘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문제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천국에서 큰 자가 됩니다.

 5. 누구에게 관심을 가질 것인가?

우리가 구원에 대해 자격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임을 안다면, 이제 어떤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지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여기서 ‘어린아이’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것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흔히 전도할 때 재정적 여유나 재능 있는 사람을 찾기 쉽지만,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마음이 힘든 사람, 큰 어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 인생의 고비를 만나 주저앉아 있는 사람 등,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물론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재정적으로 풍족하더라도 마음 한편에 신앙적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고,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주변의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을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복음을 말해주는 놀라운 일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6. 사람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이제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작은 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무서운 경고를 하십니다.

>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연자 맷돌’은 나귀가 돌리는 거대한 맷돌로 수백 kg에서 수 톤에 달하는 엄청나게 무거운 돌입니다. 이것을 목에 매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는 것은, 미약한 믿음의 지체(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죄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큰 죄인지를 극단적으로 강조하신 것입니다.

실족하게 하다(스칸달리조)는 다른 성도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어 결국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모든 행위를 포함합니다. 이런 행위는 하나님께 큰 벌을 받게 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스스로 실족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고하십니다. (마 18:8-9) 손, 발, 눈이 죄를 짓게 할 것 같으면 잘라내고 빼어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신체 기관은 세상과 접촉하여 죄의 유혹에 넘어지게 하는 대표적인 요소들을 상징합니다. 이는 문자 그대로의 절단 명령이 아니라, 죄를 멀리하고 죄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다른 성도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죄가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 역시 죄에서 멀어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의 어린아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으로 구원받았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사는 성도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7.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양 100마리 비유는 우리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양 100마리 중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99마리를 놔두고 그 한 마리를 찾으러 가라고 하십니다. 경제적으로는 99마리를 잘 관리하는 것이 낫지만, 세상의 가치관과 달리 교회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머지 99마리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한 마리를 포기하거나 버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잃어버린 양은 교회 공동체에 처음 온 사람일 수도 있고, 신앙생활을 막 시작하여 믿음이 연약한 자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누군가에게 실족당했거나 삶의 어려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성도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먼저 시작했다면, 좋은 본을 보여주고, 어려울 때 기도해 주고, 먼저 관심을 가져 주며 영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해 주고, 볼 때마다 웃어주고, 품어 주어야 합니다.

시편 23편 1절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두 잃어버릴 수 있는 양과 같았지만,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이 마음으로 서로를 돌보아야 합니다.

 8. 결론: 하나님의 마음과 어린아이 

예수님은 제자들의 세상적인 논쟁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작동 원리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힘, 권력, 재능)과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노력이나 능력으로 구원받을 자격이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한 믿음으로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것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고 은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기준입니다.

성도는 이 은혜를 깨닫고 스스로를 자랑할 수 없으며, 가장 미약하고 연약한 믿음의 지체(작은 자)를 세상의 잣대로 무시하거나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처럼, 교회는 연약한 성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사랑과 섬김을 베풀어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과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미약한 지체를 돌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9. 실천적 적용점 (3가지)

오늘 마태복음 18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3가지 적용점을 나누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  나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낮추고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의존하십시오.

    *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스스로의 능력이나 자랑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 교만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목자이심을 인정하며 매일 말씀과 기도로 그분을 의지하는 삶을 사십시오.

2.  교회 내의 ‘작은 자’를 끝까지 돌보고 실족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 믿음이 약한 새 신자, 재정적/신체적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성도, 마음의 상처를 입은 지체를 무시하거나 판단하지 마십시오.

    * 우리의 말이나 행동이 다른 성도에게 걸림돌(실족)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영접하고 섬기며 격려하십시오.

3.  죄와 유혹의 ‘걸림돌’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분리하십시오.

    * 타인을 실족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죄에 빠지게 하는 습관, 시선, 환경(손, 발, 눈으로 상징되는)이 있다면 과감하게 끊어내야 합니다.

    * 죄와 타협하지 않고, 말씀의 기준으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곧 ‘작은 자’를 보호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길입니다.

축복: 오늘 말씀처럼 어린아이의 겸손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심정으로 성도들을 섬기는 풍성한광염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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