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화)

역대하 22장
질문
아하시야의 아버지는 누구인가요? (1절)
아하시야의 할아버지는 누구인가요? (9절)
아하시야가 악한 길을 가게 된 원인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3절)
그러나 그는 누구의 가르침을 받았습니까? (4,5절)
새번역으로 읽어보고 그 의미를 더 생각해봅시다.
그는 아합 가문을 따라 주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아합 가문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 다스리다가, 그만 망하고 말았다.
아하시야는 요람왕(북 이스라엘)과 연합하여 전쟁을 합니다. 이것은 어머니 때문인가요? 아니면 본인 스스로 한 일인가요?
아하시야는 어머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악한 길을 가게 되었나요?
아니면 그에게도 선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나요?
아하시야는 아버지(여호람)와 할아버지(여호사밧)에 대해서 충분히 배운 것이 있었을 겁니다.
적용
누구의 가르침을 받을 것인가?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
부모로서 자녀를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자녀가 좋은 신앙을 갖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배웁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삶에서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자녀
자녀로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유대인을 많이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선생님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선한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나는 선한 가르침을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9장
질문
맹인은 언제부터 맹인이었습니까? (1절)
사람들은 맹인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으려고 합니까? (2절)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한 날은 언제입니까? (14절)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왜 맹인의 부모는 두려워했습니까? (22절)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맹인으로 생각합니까? (40절)
예수님도 역시 맹인을 무엇과 연결해서 말씀하십니까? (41절)
적용
맹인은 죄인을 의미합니다.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난 우리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것은 죄인을 용서해 주신 것과 마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그 당시 유대인들은 맹인이나 몸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경우 무조건 죄가 그 원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맹인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맹인은 죄인을 상징합니다.
맹인은 스스로 눈을 뜰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눈을 뜨게 해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죄인도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해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에 비해서 바리새인들은 맹인이 아니기에 눈을 뜨게 해줄 사람이 필요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과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혹 죄를 지어도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죄 문제를 해결해줄 구원자(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보시기에 죄인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항상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