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22 칼럼
2026.2.22 칼럼

1. 서론: 평화의 식탁 뒤에 들려오는 전쟁의 함성
지난주 우리는 다윗이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며 소외되었던 므비보셋에게 파격적인 은혜를 베푸는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사무엘하 10장에 들어서면 분위기는 급반전됩니다. 은혜의 기록 바로 뒤에 암몬과 소바를 점령하는 거칠고 치열한 전쟁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정복해야 할 물리적 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전쟁 기사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정교한 영적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왜 평화로운 식탁의 교제 뒤에 전쟁의 함성이 들려와야만 했는지, 이 사건이 우리에게 전하는 본질적인 음성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첫 번째 전쟁: 호의가 비극이 된 ‘의심의 함정’
사건의 시작은 암몬 왕 나하스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다윗은 과거 자신이 나하스에게 입은 은혜를 기억하고, 그의 아들 하눈에게 조문객을 보내 호의를 베풉니다. 하지만 하눈의 곁에는 악한 조언을 하는 신하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순수한 조문을 ‘정탐’으로 왜곡하며 하눈의 귀에 독을 심었습니다. 분별력을 잃은 하눈은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 수염 절반을 깎고 의복의 중동볼기(엉덩이)까지 잘라 돌려보내는 치욕적인 모욕을 가합니다.

이는 단순한 결례를 넘어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눈은 곧장 아람과 소바 등에서 3만 3천 명의 용병을 고용하여 대항합니다. 이스라엘의 요압 장군은 앞뒤로 포위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를 모면합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전쟁은 암몬 군사가 성안으로 숨어버림으로써 완전한 종결을 보지 못한 ‘애매한 승리’로 남게 됩니다.

3. 두 번째 전쟁: 보병이 탱크 부대를 이기는 역설
자존심이 상한 아람 왕 하닷에셀은 전열을 가다듬어 더 큰 군대를 모으고 ‘헬람’에 집결시킵니다. 이번에는 다윗 왕이 직접 참전합니다. 당시 전력 차이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칼과 창을 든 ‘보병’ 위주였던 반면, 아람은 당시의 탱크와 장갑차라 할 수 있는 ‘병거 700대’와 ‘마병 4만 명’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확실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 승리는 단순히 전쟁의 이김을 넘어 영토의 확장으로 이어집니다. 북쪽 유브라데 강부터 남쪽 홍해까지 다윗의 통치 영역이 넓어지며, 훗날 솔로몬 시대의 부강함을 이루는 기틀이 마련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꺾이고,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무는 자는 지경이 넓어지는 역전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4. 은혜를 대하는 두 가지 얼굴: 므비보셋 vs 하눈
우리는 여기서 질문해야 합니다. “이 전쟁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답은 9장의 므비보셋과 10장의 하눈을 대조할 때 명확해집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다윗의 ‘은혜’가 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 므비보셋: 스스로를 ‘죽은 개’와 같다고 고백하며 자신의 연약함(장애)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다윗이 내민 은혜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왕의 식탁에서 평생을 먹는 왕자의 권세를 누렸습니다.
* 하눈: 자신의 힘과 권세를 의지하며 다윗의 호의를 의심하고 거절했습니다. 은혜를 모욕으로 되돌려준 결과는 패배와 멸망이었습니다.

결국 이 본문은 ‘은혜를 대하는 태도가 곧 생사와 직결됨’을 보여줍니다.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음을 인정하는 자는 생명을 얻고, 내 힘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자는 은혜 밖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5. 한나와 마리아의 노래: 영적 역전의 서곡
성경은 이 원리를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의 노래로 증명합니다. 사무엘상의 ‘한나의 노래’와 누가복음의 ‘마리아의 노래’는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을 얻으며, 권세 있는 자는 낮아지고 비천한 자는 높아진다는 선포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회적 약자를 편드시는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암흑기 속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메시아를 영접할 수 있다는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바리새인이 아닌 세리와 창기들이 그분을 영접한 이유는, 그들이 바로 “내 힘으로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영적 파산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6. 결론: 당신은 진정으로 가난한 자입니까?
오늘 본문의 전쟁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교만한 하눈입니까, 아니면 은혜 입은 므비보셋입니까?”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은혜의 다리’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내가 아무리 세상적으로 유능하고 부유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자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이며 천국의 소유자입니다.

이번 한 주, 세상의 가치관은 “네 힘을 믿어라”고 유혹하겠지만, 우리는 므비보셋처럼 하나님의 식탁을 사모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영생이 있음을 믿고, 오직 주님의 은혜만이 나의 유일한 살길임을 고백할 때, 우리 삶의 모든 영적 전쟁은 승리로 마침표를 찍게 될 것입니다.

1. 암몬 왕 하눈은 다윗의 조문 사절단을 오해한 이유와 그들에게 가한 구체적인 모욕은 무엇이었나요? 

2. 요압 장군이 위기 상황에서 형제 아비새와 나누었던 결단과 믿음의 고백은 무엇인가요? 

3. 두 번째 전쟁의 승리에서 하나님의 통치 방식은 무엇인가요? 

4. 나의 영적인 모습은 므비보셋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하눈에 가깝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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